2015.3.7.
Under City 합작 中
언더 시티의 마피아 조직, 노스트라. 그곳에는 지금 피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숙청’의 과정이다.
과거 언더 시티 이면에서 벌어진 노스트라와 헤니르 사이의 대접전이 비교적 평화로운 방향으로 종식된 뒤, 두 조직은 서로의 ‘표면적인’ 우호관계를 위해 그간 조직 사이의 갈등을 조장했던 인재들을 암묵하에 처벌하자는 조약을 맺었다. 헤니르 측에서 어떤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노스트라는 또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상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조직의 중추에서 벌어지는 일에 간섭할 수 없는 어소시에이트들은 더욱더 그러했다. 그들은 그저 조직 내 지극히 낮은 입지를 가지고 있는 서로의 목숨을 걱정하며 언제 어디서 소리없이 사라질지 모르는 자신들의 운명을 비관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헤니르 측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노스트라에서는 하급 조직원들의 목숨을 몇 개 가져간 것 정도로 헤니르와의 우호 조약을 충족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 같았다. 즉 노스트라 측의 ‘숙청’은 어디까지나 행동대장인 솔져 이상의 계급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 된다. 며칠 뒤 노스트라 내에서는, 특히 목숨을 부지한 어소시에이트들의 사이에서, 불온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숙청’ 대상에 속해 있는 조직원들의 명단이 그 소문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명단 맨 위에 올라가 있는, 노스트라에서도 헤니르에서도 유명하기 그지없던 솔져의 이름.
테리어드 W. 매저즈. 미스 티아. 통칭, 노스트라의 상어.
과거 헤니르 조직원과의 친분을 의심받아 한 번 청문회에 섰던 그녀가, 이번에는 헤니르와의 우호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숙청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노스트라 내의 불온한 분위기에 박차를 가하기 충분한 사실이었다. 공교롭게도 미스 티아, 테리어드는 그 리스트가 어소시에이트들 사이에 나돌아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 전혀 노스트라의 아지트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는 용모를 지니고 있기에 그녀의 부재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영향인지, 어소시에이트들 사이에서는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쥐도새도없이 살해당해 강에 버려졌을 거라느니, 워낙 외모나 몸매가 우월했으니 간부들의 장난감으로 돌려졌을 거라느니, 혐의를 부정했기 때문에 노스트라 본부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거라느니 하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물론 그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자들 중에 테리어드가 정말 그렇게 된 것을 본 자는 없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이 몇 가지 있어, 그 소문을 부채질했을 뿐이다.
하나. 그녀의 성이었던 술집 몬도 카네가 ‘휴업’이 아니라 완전히 폐업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
하나. 그녀의 직속 상관이었던 카포레짐 류상이 테리어드에 관련된 화제에는 완고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
하나. 그녀의 동료였던 니콜라이 페드로프나 부하인 후안 에반스의 입에서 테리어드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
고작 그것만으로도 어소시에이트들 사이에서 테리어드 W. 매저즈라는 전설적인 여성 솔져가 노스트라 내에서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후우…….”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벽에 두 팔을 구속당한 채 매달려, 빛이라곤 전혀 들어오지 않는 형식적인 창문을 들여다보며, 테리어드 W. 매저즈는 가만히 날짜를 센다.
앞으로 며칠만 기다리면, 일주일이다.
Talk About T
1. 그녀는 그의 중요한 고객이다
“명목상이라는 건 아주 중요한 거거든, 형씨.”
불만스레 자신의 총을 손질하며, 남자는 불만스런 눈빛으로 제 눈 앞에 앉아 있는 청년을 노려본다. 청년은, 아직 ‘뒷세계’라 불리는 암흑의 공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적어도 자신이 한 행동이 눈앞의 남자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똑바로 자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꽃집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을 찾으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멱살을 잡고 흔든 것도, 막 꽃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사장이 가게의 소란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에게 덤벼들어 ‘미스 티아’의 일로 할 말이 있다고 울부짖었던 것도, 그 나름대로는 이유를 갖추고 있기에 한 짓이었다.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는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스 티아’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동기가 있었고, 노스트라에 갓 발을 들인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얼마 없었다. 덕분에 그는 이 상황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설명하기 위해 사장이 준비한 변명대로, ‘중요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아 황급히 피앙세에게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머리 빈 의사’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미스터, 제게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방법이 없다고 해도 말이지, 나는 별로 아는 게 없어. 애초에 미스 티아는 고객일 뿐. 나는 그 여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해.”
그 점은 알고 있다. 청년, 칼릭스 바스커빌은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 남자가 자신에게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이작 베링거. 언더 시티의 곳곳에 있는 수많은 꽃집 중 한 곳의 사장. 주된 고객은 꽃집이 위치한 주택가에 사는 주부들과 가끔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고 싶어 하는 회사원들, 그리고 미스 티아- 즉 테리어드 W. 매저즈. 마지막 고객이 ‘주된 고객’ 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튀는 존재인 것을 고려해 보면, 이 남자가 결코 평범한 꽃집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 베링거는 뒷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히트맨이었다. 성공률도 제법 뛰어나다. 다만 변덕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스트라 내에서도 그를 히트맨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테리어드 정도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테리어드는 남자에게 있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는 고객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단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눈에 띄니까 제발 꽃을 사 가는 척이라도 하라는 충고를 그녀가 매번 무시한다는 것 정도일까. 게다가 아이작은 칼릭스와도 그렇게 큰 접점은 없었다. 굳이 인연을 찾아보라면 과거 테리어드가 칼릭스를 경호한다는 ‘귀찮은’ 임무를 떠맡았을 때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일조를 해 주었다는 점과, ‘꽃은 제 인생에서 단 한 송이로 충분합니다’ 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두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들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협조할 이유가 없고 당신도 내게서 얻어갈 이야기는 별로 없을 거라는 아이작의 결론을, 칼릭스가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들어야 했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조직의 ‘숙청’에 말려들어가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칼릭스 바스커빌의 여신을 위해서.
“미스터…… 당신이라면 이해해 주실 것 아닙니까.”
“뭘 말야.”
“제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일에 휘말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직에서 큰 입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가 위험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런 무력한 상황을 그저 견뎌내야만 하다니. 당신이라면 그런 괴로움을 버틸 수 있을까요.”
“우리 아가씨는 내가 평생 지켜줄 테니까 상관없는데.”
“저도 그러고 싶은 겁니다.”
“…….”
“단서가 될 만한 것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뭐든, 정말 뭐든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당신이 그녀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다면, 알 만한 사람이라도 소개시켜 주십시오. 조직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알려주십시오. 제발.”
무릎에 손을 얹고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칼릭스를 보고,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이거 안 되겠구만’ 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칼릭스는 고개를 들려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고개 숙인 칼릭스의 머리 위에서 들려온, 총이 조립되는 소리였다.
“그럼, 테스트를 하자고.”
“예?”
“아까도 말했듯이 난 노스트라 사람이라면 미스 티아밖에 몰라. 그러니 노스트라 조직에 대한 일은 내 입에서 나올 수 없지. 다만 형씨가 원하는 것 중 하나…… 조직의 생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건 어렵지 않지. 하지만 우리 아가씨는 아주 비싸거든? 아무나 만나게 해 줄 수는 없지. 그러니까 테스트를 해 보자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아이작은 막 조립한 리볼버를 칼릭스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 아닌 리볼버의 차가운 총구 끝자락이 이마에 닿자, 저도 모르게 소름과 함께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 한 번 겪어보았던 죽음의 위기가 코앞에 다가온 것을 직감한 청년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아이작은 씩 웃었다.
“6분의 1 확률이다. 총알을 피해간다면 우리 아가씨를 만나게 해 주지. 총알이 걸린다면, 그냥 여기서 죽으면 돼.”
어떻게 할래?
아이작의 그 질문에 칼릭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테리어드 W. 매저즈의 생사에 대한 소문에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더해진 것은 그녀가 노스트라에서 모습을 감춘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바쁜’ 일이 생겨 테리어드의 보조를 할 수 없게 된 후안 에반스 대신 일시적으로 그녀에게 붙어야 했던 불운한 어소시에이트가, 그녀의 ‘숙청’ 과정에 대해서 입을 연 것이었다.
그가 딱히 입이 무거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위에서 입을 막으려 했다는 정황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털어놓을 이 정보가, 동료들을 크게 뒤흔들어 놓을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으리라. 어소시에이트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말 한 마디로 상황이 바뀌고,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주목되는 순간을.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가 묘사한 과정은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정말로 숙청당했을 거라는 어소시에이트들의 추측에 가까운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 줄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테리어드에게 무기를 배달하러 왔었다.
청문회 이후로 묘하게 주목을 받게 된 테리어드는 자신에게 무기를 조달해 주는 카포레짐의 가게에 자주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청문회에서 노스트라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훌륭하게 증명해 보임으로서 노스트라 간부들의 눈에 든 그녀가, 언젠가는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카포레짐으로 승격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부풀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녀는 어찌 됐든 자신이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카포레짐으로 추천해 줄 수 있는 자신의 상사에게도 쉽게 접근하지 않았고, 죽어나는 건 어소시에이트 뿐이었다. 나이프로 총알을 막아내는 터프함 때문에 그녀의 무기는 언제나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고, 그는 불운하게도 일주일에 몇 번씩 류상의 가게에 찾아가 그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테리어드를 위한 무기를 조달해야만 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그는, 후안 에반스가 복귀하기만 하면 내 이 짓 그만두고 만다, 라는 일반 샐러리맨의 대사를 속으로만 던지면서 테리어드의 집을 찾았고, 그녀는 언제나처럼 그의 노고에 ‘수고했어요’ 라는 말 외의 인사는 하지 않은 채 나이프를 점검했다. 문제가 없다면, 이대로 퇴근이다. 빨리 끝내주세요, 미스 티아. -라는, 말로는 할 수 없는 불만을 속에만 담아둔 채 그는 테리어드의 옆에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가 오늘 정시퇴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테리어드의 말에 달린 셈이었다. 만의 하나라도 나이프의 질에 문제가 있다면 다시 류상의 가게로 달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억울해서라도 빨리 승진하고 말지. 투덜대던 그의 귀에 운명을 가르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저, 미스 티아. 누가 왔습니다만.”
“나가지 마세요. 나는 혼자 사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방문 판매나 뭐 그런 걸 거예요.”
그러나 그녀의 추측은 정확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수입을 늘려보려고 온갖 집을 찾아오곤 하는 방문 판매원이라면, 벨을 눌러 사람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바로 다음 집으로 넘어가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니 몇 번이고 벨을 누르고, 이윽고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하는 방문자의 행패는 그에게는 물론 테리어드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나이프를 만지작댈 뿐 몸을 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소시에이트는 조용히 자리를 떠, 감히 누가 노스트라의 상어의 집 문을 부서질 듯 두들겨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그가 문 앞으로 다가가 불청객을 파악하기 위해 한 쪽 눈을 문에 가져다 댄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져 나갔다. 불운하게도 그는 부서져 나간 문에 얼굴을 정확히 부딪혀 이마가 찢어지는 불상사를 겪어야만 했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일으켜 이게 무슨 짓이냐고 외치려던 그는 구둣발로 집을 침범하는 다섯 명의 남자가 자신의 동료라는 사실과, 그들의 뒤에 서 있는 남자가 테리어드와 모종의 대립 관계를 세우고 있던-물론 그녀 쪽에서는 상대도 하지 않았겠지만- 솔져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다. 테리어드가 앉아 있는 거실 소파까지 겁없이 침입한 그들은 그녀를 향해 저마다 총을 들이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할 말을 잃은 그의 코앞에서 사건은 전개되고 있었다.
“미스 티아. 청문회 연락은 받았을 텐데, 어째서 출석하지 않았지요?”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기에 그랬을 뿐입니다.”
“일개 솔져가 간부들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이전에 있었던 건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을 텐데요. 무엇 때문에 다시 청문회를?“
“그런 건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일어서서 동행해 주십시오.”
“싫다고 한다면?“
“……강제로 끌고 가야겠지요.”
그는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 조직의 명령에 대놓고 반항하는 테리어드와 저 노스트라의 상어 앞에서 ‘강제로 끌고 가겠다’는 발언을 하는 솔져 중 누가 더 무모한 것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테리어드의 정신이 나간 것이다. 감히 노스트라 상층부의 명령을-그 명령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당시의 그가 알 수 있을 리 없었지만- 제아무리 주목을 받고 있다지만 일개 솔져에 불과한 그녀가 거부하다니. 어소시에이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가져다 준 나이프를 쥔 채 흉흉한 적의를 감추지도 않고 있는 저 노스트라의 상어에게, 그녀에게 있어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총을 들이댄 채 위협을 가하고 있는 솔져의 정신상태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이, 알고 있어? 저 여자는 빡이 치면 이 자리에 있는 여섯 명 정도는 순살해버릴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여자라고! 팽팽한 긴장 상태에 그는 저절로 군침을 삼켰다.
그리고 테리어드가 나이프를 든 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그 긴장 상태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동시에 발사된 다섯 대의 총알이 정확하게 테리어드를 습격했던 것이다. 두 발은 양 팔의 관절에, 두 발은 그녀의 허벅지를 꿰뚫고 지나갔다. 남은 한 발은 어떻게든 튕겨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집 천장에 파고들었을 뿐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쥐고 있던 나이프는 또다시 망가진 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당장 목숨까지 빼앗을 순 없습니다, 미스 티아. 당신에게는 들어야 할 말이 있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다섯 명의 어소시에이트가 덤벼들어 테리어드의 전신을 구속했다. 붙들린 채 자리에서 끌려 나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어소시에이트는, 긴장으로 떨려오던 다리를 그제야 해방시킬 수 있었다. 피 냄새가 흐리게 풍기는 그녀의 집에 혼자 남아 그는, 자신이 저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절대 위에 반항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진리를 머릿속에 깊게 새겼다.
2. 그녀는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란다.
“저는 할 얘기가 별로 없는데요…….”
역시나 냉정한 반응이었다. 아니, 냉정하다기보다는 망설이는 반응이라고 해야 좋을까. 칼릭스의 앞에 앉아서도 소녀는 계속 뒤에 서 있는 아이작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이작을 두려워한다기보다는, 나 어디까지 말해야 해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아이작은 그런 소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가씨가 아는 만큼만 말해주면 된다’고 말했고, 소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빠는 뭘 어디까지 알고 싶어요?”
“저…… 그것보다, 옷을 제대로 입어주시면 안 될까요…….”
칼릭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녀는 맨몸에 헐렁한 셔츠 한 장 외에는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 지 좀처럼 알 수 없을 정도지만, 처음 소녀가 현관으로 나와 그들을 맞이했을 때보다는 나은 복장이었다. 처음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소녀는 맨몸에 슬립 하나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소녀의 그런 모습을 눈에 담았을 때 칼릭스는 바로 등을 돌리고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는데, 그것은 사실 그의 목숨을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가 소녀의 몸을 바라보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면 아이작은 당장 그의 눈을 파 버렸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칼릭스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소녀가 과거 메리켄너클을 달고 그의 목숨을 빼앗으러 왔었던 헤니르의 옛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째서 소녀가 노스트라에게 고용된 히트맨의 집에서 살고 있는지, 소녀와 아이작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런 것을 추리할 만한 시간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길게 얘기할 것도 아니고, 옷 갈아입기도 귀찮아요. 이걸로 충분해요. 그렇죠, 아저씨.”
“응? 아, 뭐. 아가씨가 그걸로 좋다면야!”
아니, 말려 주세요. 제발요. 칼릭스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는 칼릭스와, 그렇게는 말했어도 소녀의 몸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아이작 간의 타협안으로 이불을 꼼꼼히 둘러 몸을 완전히 감춘 뒤에야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그 언니가 지금 조직의 숙청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 그렇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요? 살아 있을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몰라요.”
“예?“
“그야 저는 노스트라의 조직원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몰라요. 헤니르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알려줄 수 있지만, 그게 오빠한테 도움이 될까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알려주십시오.”
칼릭스의 부탁에 소녀는 흐음, 하고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도움이 된다면 말하겠지만, 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점으로 보아 그녀 역시 자신의 말에 자신은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만큼, 소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칼릭스의 심장을 떨어지게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헤니르에서 조직원이 그런 일에 휘말렸다면 일단 죽이는 게 일반적이에요. 여자 조직원이면 약에 절게 만들어서 사창가에 팔아넘길 수도 있겠죠. 물론 그 언니는 실력이 워낙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저처럼 문제를 일으킨 곳이 아닌 다른 크루에 소속되어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야 있겠지만…… 오히려 뛰어난 실력의 사람이니까 더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없애다니…… 죽이는 겁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래요. 헤니르에서는 그런 일 없지만, 노스트라에서는 명분을 만들려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명분은 있어야 할 테니까, 나름대로 이유를 만들어내려고 하겠죠. 예를 들어 적 조직이랑 내통을 했다거나, 혹은 횡령 같은 걸 저질렀다거나. 노스트라는 배신을 제일 해서는 안 될 일로 치죠? 그럼 배신자라는 이유를 만들어서 죽이는 게 가장 빠를 거예요. 그리고 그 적당한 ‘이유’가 언니 입에서 나올 때까지 고문을 한다는 식으로 살려둘 수도 있어요.”
“세상에…….”
“그리고 그 ‘고문’ 말인데…… 어떤 일을 당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알려줄 수도 있어요. 어디까지나 헤니르의 이야기지만.”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웃어보였다. 일반인의 상식을 일탈하고도 남은 그 미소에서 칼릭스는 저절로 오싹함을 느꼈지만, 그 오싹함이 소녀의 입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타임 오버! 라는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아이작의 손이 칼릭스의 목덜미를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미스터?!”
“처음부터 5분만이라고 했잖아.”
“하, 하지만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
“내가 알 바냐.”
“도와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내가 언제 그랬어? 아가씨랑 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 그것도 5분만. 이제 끝이야. 타임 오버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릭스를 현관까지 질질 끌고 간 아이작은 현관문을 열고 그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바로 문을 닫아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라온 소녀가 아이작의 팔 뒤에 숨어 얼굴을 삐쭉 내밀자 아이작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혹시라도 아이작을 말려주려나, 하는 칼릭스의 기대는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 그들을 맞이했을 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순수한 표정으로,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는 칼릭스를 향해 이 말만 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만약 조직 간의 사정에 휘말린 거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거든요. ……하지만 전 그 언니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하곤 이제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해린 언니가 아직 승부를 내지 못했다고 했으니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소녀의 말과 함께 문이 세게 닫혔다. 망연자실한 칼릭스의 머리에 남은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해린.
테리어드 W. 매저즈가 끌려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조직원의 증언 이후 노스트라 내에서 테리어드의 ‘숙청’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자들은 거의 사라졌다. 원인은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노스트라 상층부가, 그 테리어드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그녀를 소환한 것만은 분명했다. 어소시에이트의 증언 속에서 테리어드 본인이 말했듯이 과거 있었던 헤니르와의 관계를 추궁하는 청문회에서-그 청문회도 사실은 비밀에 붙여졌어야 했으나 어째서인지 어소시에이트들 사이에서 테리어드가 그런 혐의로 청문회에 불려갔었다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숨길 기색도 없이 돌고 있었다-결백을 증명했음에도, 그녀는 다시 논란의 한가운데 선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헤니르 조직원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간부들 사이에서 선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은 들썩였다. 오랜 분쟁에 지쳐 헤니르와의 우호관계를 꾀하고 있는 노스트라 상층부가 헤니르 조직원 중 한 사람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솔져를 가만히 둘 리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노스트라에의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한 말이 그녀의 목을 조르게 된 셈이었다.
몇몇 어소시에이트들은 그녀를 동정했다. 그녀는 단순히 노스트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것뿐인데,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를 잡아먹듯 죽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몇몇 어소시에이트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충성심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높은 투쟁심과 권력욕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테리어드는 그 말을 함으로서 간부들의 눈에 들었고,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던 간에 조만간 다른 간부를 밀어내고 카포레짐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기반을 다져 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의견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소시에이트들은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마주했다. 아주 늦은 밤, 지하감옥에서 한 명의 여자가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로 끌려 나와 아지트 밖으로 추방당했다는 것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하감옥에서 끌려나온 여자는 피가 말라붙은 탐스러운 금발과 갈색 피부로 이루어진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눈은 오랜 고문 끝에 제대로 뜨지도 못할 정도였고,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는 끔찍한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이프를 잡고 휘두르던, 곱게 뻗은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는 온존한 형태를 유지한 손톱을 찾아 볼 수 없었고, 언제나 하이힐 속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고운 발도 난도질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게, 테리어드 W. 매저즈는 노스트라에서 ‘숙청’ 당했다. 그녀의 존재는 더 이상 노스트라에 없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어소시에이트들의 흥미는 급격히 식어버렸다. 소문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 끝에 남는 것은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사라졌으니 헤니르와의 우호관계는 확실히 다져질 거라는 추측뿐이었다.
그러나 노스트라 상층부의 여론은 어소시에이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간부는 목소리를 높여, 테리어드 W. 매저즈를 필두로 한 ‘헤니르 반대파’를 거의 숙청했으니 헤니르도 반성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헤니르는 방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언더 시티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할, 가장 확실한 상황 아닙니까. 이를 갈듯 말하는 그 간부야말로 자신이 말하는 ‘헤니르 반대파’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부들이 모를 리 없었다. 상층부에서는 한동안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대로 헤니르와의 우호관계를 굳힐 것인가, 방심하고 있는 헤니르를 습격해 완전한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리고 오랜 토론 끝에 노스트라의 보스가 입을 열었다.
거기서 그가 내린 결론이 노스트라 내에 불어닥칠 피바람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이 어소시에이트들 사이에서 퍼지는 것은,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자신의 자택에서 끌려나가는 해프닝이 벌어진 지 정확히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3. 그녀는 그녀를 높게 평가한다
“내게 할 말은 없습니다.”
칼릭스 바스커빌이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명함이었다. 그 명함의 주인은 겉으로는 각종 업계의 저명인사를 호위하는 경호원이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뒤에서는 헤니르의 조직원이라는 제 2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이해린. 과거 칼릭스가 한 번 만난-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이기는 했으나- 적이 있으며, 그를 보호하고자 앞으로 나섰던 테리어드의 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으로 나온 적이 있었던 이름이었다. 칼릭스는 이후 테리어드에게서, ‘내게는 필요없는 물건’ 이라며 해린의 명함을 건네받았다. 그게 없었더라면 해린에게 닿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건, 당연하게도, 해린에게는 꽤나 민폐였던 모양이다. 다짜고짜 자신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테리어드 W. 매저즈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한 칼릭스를 향해 해린은 쌀쌀맞기 그지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 그래도, 미스 티아가…… 그녀가 살아있는지만이라도 알 수 없겠습니까?”
“내가 그런 요구에 답해줄 것 같나요?”
“부,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당신에게밖에 기댈 수가 없어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군요. 어째서 노스트라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묻는 겁니까?”
“그건…….”
“당신도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죠. 조직 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는 조항을. 잘은 모르지만, 노스트라에서라면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사실조차도 ‘배신’의 일환이 됩니다. 물론 지금이야 노스트라와 헤니르 사이에 우호 조약이 맺어졌으니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 이상 파고들어오면 당신에게도 분명 불이익이 생깁니다.”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나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한심한 생각이군요.”
전화 너머로 들려온 해린의 목소리는, 칼릭스가 여태까지 마주한 어떤 칼날보다도 날카로웠다. 실제로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런 불쾌함과 거기서 나오는 살의를 전혀 감추지 않은 채 칼릭스를 노려보았으리라. 딱 한 번 보았던 해린의 얼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총을 들이대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칼릭스가 공포에 몸을 굳힌 사이 해린은 그에게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나는 경호원 일을 하면서, 내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을 목숨 바쳐 지킵니다. 당신을 호위하던 때의 그 여자도 그건 마찬가지였겠죠. 명령이라는 이유는 있었겠지만, 그 여자는 전신에 총을 맞아가면서도 당신을 지킨 전적이 있습니다. 구원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 여자는 거기서 죽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지켰던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이런 어리석은 짓에 선뜻 내어놓는다고 생각하면 그 여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그건…….”
“당신의 그 발언은 그 여자를 모욕하는 발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불쾌하기 그지없군요.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길게 늘어지는 통화음을 들으며 칼릭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에게는 자신의 여신을 구할 힘도, 능력도,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전신을 지배하는 좌절감에 천천히 영혼을 죽여가던 그가 이윽고 하나의 결심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그는 그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의 여신은 그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지 않으며, 애초에 그의 행동 자체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사실을.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으로 노스트라 아지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숙청‘의 피바람이 한바탕 불고 난 뒤의 일이었다.
4. 그녀는 조직에 충실하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걸요.”
전화를 끊는 해린의 뒤에서, 그녀의 그런 행동을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내심 매우 감탄하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몸을 돌린 해린은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그녀라면 아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감정이 묵인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해린의 매서운 눈빛을 받는다고 움츠러들 만한 여자가 전혀 아니었다. 방금 전, 아이작 베링거와의 통화-“말해두지만 나도 우리 아가씨도, 이런 일에 협조하는 건 이번뿐입니다.”-를 끝낸 해린의 현재 고용주- 테리어드 W. 매저즈는, 험악한 시선의 해린에게서 고개를 돌려 달력을 흘깃 쳐다보았다.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도와드리겠습니다.”
해린은 그렇게 말했지만, 테리어드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갈 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녀가 챙겨야 할 것은 이 일주일 동안 정성껏 손질했던 나이프뿐이었다. 제 3자의 앞에서 조직에 끌려간다는 ‘연기‘를 펼쳐 보였을 때 류상이 ‘소품’으로 마련해 주었던 나이프와는 질이 다른 물건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여자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선-물론 해린이 얌전히 죽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나이프를 곱게 정돈해 재킷 안쪽에 찔러넣고, 테리어드는 얼얼한 손끝을 주물렀다. 손톱이 빠져버린 자국은 빈틈없이 치료한 뒤 붕대까지 감아 두었으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그녀는 가만히 일주일 전, 류상에게 불려갔던 일을 떠올렸다.
헤니르와의 우호 조약을 맺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간부들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헤니르 반대파의 움직임이었다. 헤니르와의 대립이 극대화되었을 때, 노스트라는 두 개의 여론으로 나뉘었다. 온건파와 반대파가 그것이었다. 언더 시티의 평화를 위해 언젠가는 서로의 조직을 삼켜버리려고 격돌하게 되더라도 지금은 잠시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낫다는 온건파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헤니르를 뿌리 뽑고 노스트라의 위상을 내세워야 한다는 반대파의 대립은 노스트라의 뿌리를 흔들 정도로 격렬한 것이었다. 기실 테리어드 본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보스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었으며, 오랜 고민 끝에 보스가 우호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류상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도 그 어떤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있는 여자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한동안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을 잠시 가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반대파는, 보스의 그런 결정에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했어도, 저마다 조심스럽게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할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헤니르와의 분쟁으로 자신들의 영역에 큰 손해를 입었거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헤니르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무리들이었다. 다만 테리어드가 그들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는 것과는 반대로, 노스트라 조직원들에게 있어 절대적이어야 할 보스의 결정에 불만이나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였다. 간부들의 대다수는 온건파였지만, 반대파의 세력도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그들이 만약 뜻을 모아 보스에게 반기를 들게 된다면 노스트라가 두 개의 조직으로 갈라지고 말 위험이 있었다. 이에 보스를 포함한 상층부에서는 하나의 계획을 짰다. 헤니르와의 우호 조약을 받아들여 반대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온건파의 일부를 배제하는 식으로 ‘틈’을 만들고, 그 기회를 노려 보스의 명령에 반기를 들 만큼의 존재들을 솎아내자고.
그리고 그 계획에서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 테리어드 W. 매저즈였다.
그녀가 선택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그녀는 보스의 명령에 복종하고는 있었어도, 조직에서는 암암리에 ‘헤니르 반대파’로 규정된 존재였다. 거기에 테리어드 본인의 의사는 없었다. 그저 청문회에서 헤니르의 조직원을, 눈앞에 서 있는 저 이해린을, 노스트라의 명예에 걸고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한 바 있기 때문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 스스로의 영달을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보스가, 혹은 상층부가, 해린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그렇게 한다. 살려두라고 한다면 또 그렇게 한다. 그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우직할 정도로 보스에게, 노스트라에게 충성을 바치는 조직원이라는 점. 언제나 보스의 명령만이 테리어드의 행동을 규정할 수 있었다. 때문에 류상이, 매우 힘든 일이 될 거라고 말하며 내심 그녀의 승낙을 말리는 듯한 말을 했을 때도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괜찮습니다, 카포. 보스께서 하라고 하신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택에서 총을 맞고 끌려가, 반대파들을 속여 넘기기 위해 아무 거짓 없는 고문을 당했음에도 그녀는 끝까지 버텨냈다. 그 과정에서 뽑혀버린 열 개의 손톱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다시 자랄 테니까,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다만 문제는 ‘숙청’ 당한 것으로 처리되어 밖으로 끌려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계획상 테리어드는 일이 일단락될 때까지는 어딘가에 몸을 숨겨야 했으나, 자신의 자택에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만한 조직원을 헤니르와의 우호 관계 때문에 잘라낸다는 얼토당토않는 상층부의 결정이 어쩌면 온건파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반대파에서 하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그녀와 가까이 지내는 조직원들의 집에 신세를 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숨겨줄 만한 지인은 거의 없었다. 제 일 후보였던 아이작 베링거는 동거인의 존재를 이유로 들어 테리어드의 은닉을 거부했다. 그 과정에서 테리어드가 떠올린 것은 두 사람이었고, 그들 중 테리어드가 택한 것은 이해린이었다. 일단 그녀는 노스트라의 조직원이 아니며, 테리어드와는 대립관계를 세우고 있는 입지에 있었다. 반대파의 허를 찌르고 진정한 숙청이 끝날 때까지 몸을 의탁할 만한 곳으로 해린만큼 적당한 상대는 없었다. 테리어드는 바로 해린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테리어드의 나이프 다섯 자루가 쓰지 못할 물건이 되고 해린의 총알이 전부 떨어지는 등의 해프닝도 있었지만, 결국 해린은 테리어드가 지하감옥에서 나온 뒤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의 사흘 동안 그녀를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와 함께 호텔에서 지내는 것을 승낙했다. 고문의 끝에 너덜너덜해진 채 약속 장소에 나타난 테리어드를 보고 그녀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은 건 물론이다.
-그래서는 한동안 나이프도 못 잡겠군요.
인상을 찌푸리고 그렇게 말한 해린은 사흘 동안 거의 거동을 하지 못한 테리어드를 위해 식사와 담배를 조달해 주거나 그녀의 상처를 치료할 의사를 데려오는 등의 일을 했다. 물론 그에 준하는 보수를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내심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느냐는 불만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끝까지 자신을 돌보아 준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평생에 한 번 만날까말까한 호적수를 이런 일로 잃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적용된 것이었으리라. 만약 해린이 반대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도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며, 테리어드는 사흘 동안 해린이 보여준 ‘헌신’을 납득했다. 물론 그것을 서로 말로 주고받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데, 그 남자는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요.”
해린이 말하는 ‘남자’ 란 것이 누군지, 테리어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칼릭스 바스커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를 자신의 여신으로 규정하며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녔던 그가 테리어드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할 뻔자였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테리어드는 자신의 몸을 의탁할 곳으로 해린과 함께 그를 떠올렸음에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조직이 노스트라의 휘하에 있으니 반대파의 눈에도 당연히 들어가 있을 거라는 사실 역시 한몫하기는 했으나, 그녀는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특유의 냉정한 시선으로 그런 감정적인 이유에서 등을 돌렸다. 칼릭스가 자신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 돌아다닐 가능성을 생각해 크루 사람들과 아이작, 해린에게까지 입조심을 시켰다. 그런 철저한 행동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도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린 역시 그 사실을 눈치 챘기에 굳이 테리어드에게 칼릭스에 대한 일을 언급한 것이리라.
‘정말, 싫은 사람이야.’
해린에게도, 칼릭스에게도 해당되는 그런 감상을 늘어놓고, 테리어드는 침대로 향했다. 이만 쉬고 싶으니 오늘은 퇴근해도 좋다는 그 제스처에 해린은 방에 걸어두었던 자신의 윗도리를 걸쳤다. 이제 이 방을 나가면 그녀의 임무는 끝난다. 고용주와 경호원이라는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 나고, 원래의 관계- 언제 어디서든 대립하는 장소에서 만나면, 또 다시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관계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테리어드도 해린도 그런 관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그런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할 정도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죽이겠어요.”
“그건 이쪽에서 해야 할 말이군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해린이 호텔 방문을 열었다. 그런 해린을 곁눈질로 바라보다 테리어드가 막 돌아누웠을 무렵이었다.
“아, 그리고. 그 남자에게는 사과해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문이 닫혔다. 테리어드는 해린을 돌아보지도, 그녀의 말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것을 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의 행동은 노스트라의 명령에 따라, 노스트라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 행동일 뿐이었다. 거기에 칼릭스 바스커빌이라는 존재가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일주일 동안 그가 노심초사하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친 일 따위는 테리어드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칼릭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나를 포기해요, 미스터.”
그녀는 칼릭스 바스커빌이 그녀에게 원하는 감정을 줄 수 없다. 그럴 생각도 없을 뿐더러, 그럴 수도 없는 존재이다. 만약 노스트라에서 그의 존재를 말살하라고 명한다면 테리어드는 어떠한 저항감도 없이 그의 심장에 나이프를 꽂아넣고,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노스트라의 상어. 노스트라가 명하는 대로 타겟을 물어뜯는 짐승이었다. 그런 존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언젠가 그 사랑이 그녀에게 닿을 것이라 믿고 있는,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제 마음을 접을 생각이 없다고 하는 그 남자는 어찌나 어리석은지.
똑바로 누워 천장을 보고, 테리어드는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허락된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이다. 다섯 시간 뒤에는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어디에도 아픈 곳이 없다는 듯, 노스트라 아지트에 모습을 드러내어 보스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조직원들에게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여유 속에서, 그녀는 입술을 열어 언젠가 부른 적이 있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It‘s not to easy, to loving me…….”
본격적인 후기를 쓰기 전에, 아이작 씨와 해린양의 출연을 허락해주신 숫자님과 스피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합작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노스트라가 티아를 희생해서 헤니르와 우호관계를 맺는다.. 는 점이었는데, 기실 티아가 조직 내에서 그 정도의 위치는 아니어서(물론 노스트라에서 유명한 히트맨이기는 하지만) 페이크를 쳐서 반대파들을 솎아내는 방향으로 선회했음. 그 와중에 티아하고 썸을 타는 중인(일방적인 썸이라 해도 전혀 문제없지만) 칼릭스도 등장시키고 아이작 아저씨랑 새 삶 시작한 제레미도 등장시켜주고... 는 사실 제레미 로그는 하나도 안 썼는데 초장부터 거한 네타바레wwwwwwwwww 이대로 괜찮은가wwwwwwwww
모든 자캐에게 애정을 듬뿍 담고 있지만 티아는 정말 개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 이런 식으로 다시 쓰게 된 게 너무 기뻤다고나 할까... 과거 언씨 분위기도 만끽해 보고! 근데 합작 공개된 거 보니까 티아랑 해린양만 빼고 죄다 커플이었다는게 함정 합작 열어주신 스피나님 감사드립니다 흡흑흑흐윽윽 사랑해요... 제가 해린양 가지면 정말 안 되나요? ()
간만에 1차 업데이트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마녀사냥 로그도 슬슬 정리해야 되는데... 오늘은 좀 바빠질 거 같으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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