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시휴업
펍 근처에서 서성이는 남자를 푸른 시선이 쫓았다. 그러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는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레 꽃다발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 꽃의 색을 확인한 순간 테리어드는 다시 카페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장미 꽃다발. 볼 것도 없이 펍의 가수에게 바치는 꽃다발이다.
'이게 벌써 몇 명 째지……? 저런다고 저 꽃다발이 전해지는 것도 아닌데…….'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그녀는 괜히 들고 있는 신문을 접었다 폈다 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순간 몇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다섯 시 반.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저 건물 뒤쪽의 대기실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 테리어드가 왜 몬도 카네 맞은편 카페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홀짝이며 제 펍을 지켜보고만 있는가. 그 답은 펍 입구에 걸린 'Closed' 라는 팻말과 관계 있었다.
헤니르와의 전면전쟁이 결정된 이후, 그녀는 몬도 카네를 일시적으로 휴점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카포레짐의 지시는 '마음대로 하게'. 그래서 사흘 전, 점장을 불러놓고 그녀가 휴점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은 이미 확정 사항이 되어 있었다. 점장은 석연찮아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휴가를 주는 방식으로 몬도 카네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당연히 단골들에게도 편지로 알렸으니, 이곳을 찾아오는 자는 어지간히 수상한 자가 아니면 없는 것이다. ―라고 사흘 전의 그녀는 판단했으나, 의외로 그렇지가 않았다. 벨에게 가지고 오는 꽃다발을 문 앞에 두고 가는 사람은 꽤 많았다. 물론, 테리어드가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꽃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거기서 자신의 '목표'를 찾아내려면, 가끔씩 한 번 와 보는 정도로는 안 되었다. 종일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테리어드가 기다리고 있는 '목표'―
바싹 마른 장미 꽃다발을 두고 가는 남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상해……."
"예, 예? 뭐가 말씀이십니까, 손님? 저희 집 음식에 뭔가 문제라도……?"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의문을 입밖으로 내뱉어버린 경솔함을 원망하며 테리어드는 커피 한 잔을 더 청했다. 만족한 웨이터가 카운터로 향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다시 펍 앞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시들어버린 장미 꽃다발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분명 몬도 카네가 폐점하는 사흘 전까지만 해도 대기실에는 그 꽃다발이 왔었다. 꽃다발은 정확히 열세 개가 되었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것과 가장 먼저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버렸다. 집 안에 장미 꽃잎이 썩어들어가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장미향을 싫어했다. 그것이 지나치게 여성적이라,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까지 알고 장미 꽃다발을 전달해 온 거라면 상대는 지나치게 고단수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신경을 긁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백이, 아니야……?'
순간 떠오른 것이 있어, 그녀는 서류들 사이에 끼어 있던 '취조록'을 꺼냈다. 재빨리 훑어보고 자신의 추측을 증명하려던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액정에 뜬 번호는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으며, 그녀는 결국 서류를 집어넣고 전화를 받았다.
"예, 카포. 티아입니다."
#2. 취조록
어두운 방에서 남자는 웃음만을 흘리고 있었다. 입가에서 침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 몇 번 물을 쏟아부으니 남자 본연의 모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복부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를 '취조'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남자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 터― 그러나 그들은 추궁을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그들에게 있어 진상의 규명 따위는 어찌되든 좋았다. 그들은 그저 상사가 내린 명령을, 불만스레 생각하면서도 충실하게 따를 뿐. 낄낄대고 웃고만 있는 남자를 짜증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던 어소시에이트 한 명이, 그 배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거기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미친 듯이 웃기만 하던 남자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자, 피에 묻은 장갑을 벗으면서 어소시에이트는 혀를 찼다.
"이 상처, 어쩌다가 이랬다고 했지?"
"미스 티아의 보디가드한테 찔렸다나 봐."
"헤에, 그런 여자한테도 보디가드 같은 게 필요하구나."
"그런 여자라니?"
"몰랐나? 노스트라의 상어잖아. 예전부터 난폭하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그…… 스프링이랬나? 건축 기사였는지 뭔지, 그게 헤니르의 말단 조직원이란 걸 알아냈을 때 그 사무실을 초토화시켰잖아. 혼자서."
"이봐, 서기가 기록하고 있잖아. 어이! 그 기록은 싸그리 지워! 그게 미스 티아한테 들어가는 날엔 네 손톱을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주겠어. 알아 들었어?"
서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 모든 내용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을 그대로 옮긴다는 제 사명을 위해서 눈은 남자에게, 손은 키보드 위에 고정한 채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불꽃이 터졌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구는 남자를 보며, 그는 냉정하게 키보드를 두드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심문을 해도 얘기하지 않고 제 상처에 손을 쑤셔넣음. 비명 소리가 지나치게 크기에 총살. 마약 중독으로 보이며, 저지른 일은 전부 정신 착란으로 보임.]
그리고 이하의 '기록'은 테리어드의 손에 들어가기 전 그 방의 어소시에이트들에 의해 한 번 '수정'되었다.
#3. 리스트
점점 부를 곡이 사라지고 있군. 한숨을 쉬면서 리스트를 뒤적였다. 꽤 옛날의 팝송부터 쭉 뒤졌는데, 신청곡으로 들어오는 것까지 합치면 웬만한 노래는 다 불렀다고 봐야 옳았다. 더이상 부를 노래가 없다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뮤지컬 쪽까지 뒤져야 하는 건가. 솔직히 말해 뮤지컬까지 뒤지기 시작하면 언젠가 겹치는 곡을 부를 때가 올 것이다. 아니, 잠시 펍은 운영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펜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테리어드는 책꽂이 맨 위에 꽂혀 있는 붉은 파일첩을 꺼내 펼쳤다. 그 안에는 테리어드가 개인적으로 모은 외국 곡들이 들어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가사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혀를 차면서 파일을 던져놓고 다시 펜을 잡았다. 흩어진 신청곡 쪽지를 날짜별로 정리하고 노트에 기록해서 많이 겹치지 않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번거로웠지만, 쪽지를 관리하는 건 테리어드 자신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문득 이상한 것을 느낀 건 그때였다.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았던 곡이, 리스트에는 물론이고 쪽지로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앨리샤 키스 Alicia Keys의 If I Ain't Got You. 자극적인 사진과 문장을 신청곡 뒤에 써서 보내, 테리어드에게 난폭한 댄스를 요청했던 여인의 신청곡. 그 날의 기념으로, 평소보다 더 엄중히 보관해 두고 있었던 것이나, 어째서인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버린 걸까?
'……설마.'
혹시나 싶어 쪽지를 보관해뒀던 파일을 다시 뒤졌다. 사흘 전, 스토커가 잠입해 왔을 때의 기록을. 그때 역시 테리어드는 신청곡을 받았다. 지갑을 잃어버린 신데렐라를 위해서, 끔찍하리만큼 로맨틱한 러브 송을 불러줬던 것이다. 그 곡은 분명히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 그 쪽지도 보이지 않았다. 신청곡과 함께 메시지도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해린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큰 위협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것들 중 하필이면 해린이 보낸 쪽지만 사라졌다는 것엔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테리어드에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몬도 카네의 휴점은 엄밀히 말하면 테리어드 자신이 제안한 것이지만, 노스트라에서 그걸 받아들인 것은 몬도 카네의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헤니르와 맞닿은 구역에서 노스트라의 간부가 운영하는 펍. 그리고 그 펍 안에 노스트라의 간부가 숨어 있으며, 전투가 발발하면 언제든지 나와서 대응할 수 있다― 는 것이 몬도 카네의 장점이었으나, 실제로 그 구역에서 헤니르와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테리어드는 제 크루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항구로 나가 있었다. 해린과 있었던 일은 자세히 보고하지 않았지만 헤니르의 관계자가 제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보고를 류상에게 한 것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점장에게 말한 대로 몬도 카네를 다시 운영하기 위해서는 몬도 카네가 유용하다는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고 그를 위해서라도 서류를 말끔히 정리해야만 했다. 지금 정리하고 있는 신청곡 리스트 같은 것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것이고, 운영자로서 파악해야 하는 사항은 꽤 높았다. 수입의 손익 계산, 직원의 고용 현황과 직원의 신분 증명, 그리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온갖 트러블― 예를 들어, 횡령 같은 것.
'횡령…….'
테리어드가 몬도 카네를 운영하기 시작한 지 4년. 횡령 사건이 일어난 건 단 두 번 뿐이었다. 한 번은 횡령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좀도둑 수준이어서 쫓아내는 것으로 그쳤지만, 다른 하나는…… 운영자인 테리어드의 바로 옆에서 자신의 연인에게 가게의 수익과 노스트라의 정보를 빼내 갔던 여자의 범행이었다. 물론 그 여자는 배신자로 점찍혀 상부의 명령을 받고 테리어드에게 살해되었다. 자신이 매번 화장을 해주던 여가수가 노스트라의 간부이자 그 펍의 실제 주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마 죽을 때까지 몰랐으리라. 그녀의 행위 때문에 펍에 찾아온 손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제이나 크롬데른이 남기고 간 것은 변함없는 일상이었다. 누군가가 부정해 주지 않는 이상 절대 변하지 않을 일상.
"……제이나."
턱을 괴고, 테리어드는 자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일을 떠올렸다.
#4. 시체
사무실은 피냄새로 가득했다. 익숙한 것이었지만, 유난히 비린 냄새가 났다.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역겨운 자의 피였기 때문이겠지. 테리어드는 웃으면서 칼날에 가득한 피를 제 바지에 닦았다. 그러나 잠시 후 바로 실수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피투성이가 되어선 여기서 나갈 수 없잖아. 아, 어차피 나갈 수 없나. 이 꼴로는. 손을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에는 원래대로의 테리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옷도 새빨갛게 물들어, 마치 붉은 포도주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여자의 모습이 서 있었다.
"네가 보면 뭐라고 했을까."
그런 짓을 하면 머릿결이 나빠지잖아! 라며, 버럭 화를 내며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줬을까. 화를 내면서, 이런 일은 그만하라고 말해줬을까? 울어줬을까? 자신을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 건 그만하라고? 그런 식의 대화가, 그녀를 죽여버린 지금도 가능할까.
"당신이 보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과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노스트라에 들어온 이후로 대체 몇 명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 이 모습을 보인다 한들 과거에 자신이 한 일들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웃었다. 큰 소리로 웃었다. 사무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들 사이에서, 지극히 유쾌하다는 듯.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져서 피를 닦아냈다. 완전히 깨끗해진 것은 아니고 겉보기에만 피의 흔적이 사라진 것뿐이지만 일단 밖으로는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꼭지를 잠그자 자연스레 냉기가 전신을 덮쳤지만 그런 기색 하나 없이 걸어나갔다.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시체들을 밟으며 사무실을 나가면서, 테리어드는 천천히 시체의 숫자를 셌다. 총 일곱 명. 그들의 애인이나 가족,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친우들은 서른 명을 훨씬 넘겠지. 그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은 그녀를 죽일 자격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 와 줄 터였다. 분명히.
이 변함없는 일상에 종지부를 찍으러.
그녀는 사무실을 나갔다. 다음 날 신문에는 한 건축기사 사무실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가 2면, 3면을 차례대로 도배했으나 그녀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꼬박 이틀을 앓아누운 다음날 펍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점장은 왠지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신문을 들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답지 않게 강경한 태도였기에, 테리어드는 자신이 제이나의 복수를 했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그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점장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테리어드로선 알 수가 없었다.
#5. 결정
-그래서, 자네는 그 구역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카포의 명령에 부합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헤니르와의 접전지인 만큼 분명 움직임이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기고에 문제가 생긴 점은…… 저보다는 카포께서 더 잘 알고 계실 테니, 저는 나설 막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렇긴 하지. ……좋아. 마음대로 하도록 해. 난 자네를 신뢰하고 있으니 말이야.
"용인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 그리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와 줘야 되니 말이야.
"물론입니다. 카포의 연락을 받으면 즉시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지, 하는 여유로운 목소리와 함께 류상의 전화가 끊겼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몬도 카네의 입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서 있었던 덕에 꽃다발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홍색 장미에서부터 백합, 글라디올러스, 붓꽃, 아네모네 등등…… 꽃의 종류는 다양했으나, 바싹 마른 장미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꽃다발들을 품에 안고서, 근처의 맨션으로 향했다. 집 안에 가득 퍼져 있을 지독한 꽃향기에 새 향기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next.
펍 몬도 카네의 점장, 비트 레이어 Bet Rayer가 테리어드와 계약을 맺을 때 약속한 것이 세 가지 있었다.
1. 경영권에 간섭하지 말 것
2. 펍 안에서 일어난 어떤 사소한 것도 보고할 것
3. 노스트라에서 내린 결정사항에는 반드시 따를 것
이를 숙지하고 계약서에 사인한 뒤로부터, 레이어는 단 한 번도 테리어드의 일방적인 선언이나 자신을 부려먹는 태도에 불만을 취하지 않았다. 그가 성실하고, 상냥하며,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착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테리어드는 언제나 레이어에게 정중한 태도를 취하려 노력했고, 자신의 꼭두각시가 아닌 '공동 경영자'로 생각할 수 있도록 대접해 주려 했다. 그 노력 덕분에 가게를 꾸려나가면서 이들 사이에 트러블이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레이어는, 한동안 가게를 닫아야겠다고 테리어드가 말했을 때 급속도로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이렇게 물었다.
-꼭…… 폐점해야만 되겠습니까? 조금만 더…… 열어두면 안 되겠습니까?
-폐점이 아니라 임시 휴업입니다. 사태가 일단락되면 다시 문을 열 거예요. 조직이 관리하라고 준 펍이니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죠.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을 포함해서 직원들의 월급은 이전과 같은 금액으로 챙겨 줄 생각이에요. 물론 당신을 점장에서 해고하지도 않아요. 휴가라고 생각하고 푹 쉬다 오면 되는 거예요. 여기에, 뭔가 문제가 있나요?
-……아니요, 문제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원들에게 말해두지요.
그러나 레이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히려 불안함마저도 느껴지는 얼굴색이었다. 몬도 카네에서 그와 함께 일해 온 것은 4년째였다. 여태까지 레이어가 테리어드의 결정에 그 어떤 불만을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지금의 이 태도는 석연찮을 정도로 이상한 것이었으나― 직장을 잃기 직전에 선 남자의 두려움으로 치부하고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아니 '초조함'이 테리어드에겐 있었다.
'이 일은 신경 쓸 것 없다'는 여유.
'이 일에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다'는 초조함.
그녀는 그 판단 때문에 사건이 터지기 전에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를 날려버렸고, 그 대가로 이 일이 있은 지 열흘쯤 뒤 노스트라의 청문회장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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