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3.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하면서 바닥에 구른 테리어드는 나이프의 잔량을 체크했다. 투척용 나이프를 제법 많이 갖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왼쪽 팔에 장치해 둔 두 개가 마지막이다. 그 외에 근접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사냥용 나이프가 두 자루 더 있지만 무겁고 커서 투척하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불리하다. 평소의 그녀라면 나이프의 개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한들, 그녀의 실력이라면 나이프 한 자루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그녀에게 불리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지원사격을 하던 조직원 한 명이 뒤로 나자빠졌다. 바닥에 뒹구는 그의 이마 한가운데는 피가 흐르는 구멍이 훤하게 뚫려 있었다. 그의 가슴팍을 뒤져 나이프를 챙기고, 총격이 잦아든 틈을 타서 상대의 팔을 향해 던졌다. 으악,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던 어소시에이트 한 사람이 당한 모양이었다. 대체 몇 명이 죽거나 다쳤을까. 그녀는 혀를 찼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수지가 안 맞는 싸움이네.'


  그러나 지금 그녀가 고전하고 있는 까닭은 부하들이 부족하기 때문도, 무기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단 두 가지. 하나는 작전상 아직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자체가 '공격'이 아니라 '수비'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뭔가를 지키는 것에는 약했다.


  #미스 티아, 자네들 조가 이제 마지막이라던데. 지금 어디까지 왔지?

  "현재 라스트 포인트에서 약 20미터 앞까지 왔습니다. 대치하고 있는 헤니르는 다섯 명에서 여섯 명. 그 중 상처 없이 전투를 속행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남은 전력은 저를 포함해서 셋입니다."

  #좋아, 이쪽은 잔당 처리를 모두 끝냈다. 행운을 빌어.

  "감사합니다."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류상의 목소리에는 아무 흔들림이 없었다. 웬만한 일로는 잘 동요하지 않는 남자지만, 적어도 크루원의 생존은 확인된 거나 다름없었다. 투척용 나이프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자 부상을 입은 조직원들이 여럿 보였다. 속히 전투할 수 있는 인원은 이제 테리어드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가 대치하고 있는 헤니르의 조직원들은 도발에 쉽게 넘어오는 편이었다. 적이 여성이고, 그것이 자신들과 맞서 싸우고 있으며, 동시에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그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감정적 도발을 거의 못하는 그녀로선 지극히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는데, 그녀의 주변으로 아직 살아 있던 어소시에이트 두 명이 모였다.


  "미, 미스 티아, 저희는 이제 한계입니다. 총알이 다 떨어져서……."

  "어떡할까요? 목숨을 바칠 각오로 전면전에 돌입할까요?"

  "엉뚱하게 목숨을 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라스트 포인트에만 끌고 가면 되니까요. 그래서, 남아 있는 무기는 얼마나 되죠?"

  "각자 권총을 한 정씩, 그리고 나이프를 갖고 있습니다."


  턱없이 부족하다. 테리어드는 자기가 갖고 있는 권총을 떠올렸다.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니는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이자 아직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무기이기도 했다. 물론 매일 밤 총을 분해해 닦는 작업은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 본 적은 없었다. 그걸 이들에게 넘겨주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최후의 보루다.

  테리어드는 자기 권총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주변 지형을 살폈다. 저격수가 위치하기엔 너무 낮지만 전황을 살피기에는 적당할 만한 폐건물이, 운 좋게도 근처에 있었다. 저곳이라면 아마 잠복하더라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두 명의 어소시에이트에게 섬광탄을 쥐어주고, 그녀는 작전을 제시했다.


  "내가 혼자 적들을 도발하죠. 라스트 포인트로 가기 직전에, 내가 눈을 감고 몸을 숙이면 바로 섬광탄을 던져요. 그 뒤 총을 난사해서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세요. 단, 1초라도 타이밍을 놓쳤다간 내가 죽을 테니 잘 해줘야 합니다.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내 목숨은 두 사람에게 달려 있어요. 그것만 명심해 줘요. 자, 먼저 라스트 포인트로."

  "예!"


  두 명의 조직원들이 총과 섬광탄을 가지고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라스트 포인트로는 몇 명이나 끌어들였을까.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방적인 살육을 적들에게 들키면 작전은 소용이 없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팔이 한 짝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데서는 죽을 수 없었다.


  '……가볼까.'


  테리어드가 나이프를 쥐고 그들의 앞으로 뛰어드는 데는 그리 큰 결심이 필요 없었다.

  '살아남겠다'.

  오직 그뿐이었다.

  헤니르 조직원들 사이에 혼자 뛰어든 것은 제법 무모한 짓이었다. 가장 먼저 희생된 사람은 목이 단번에 베여 죽었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린 이들이 총을 쏴대기 시작하자 도저히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자기들의 진영이 흐트러졌다는 걸 안 헤니르 조직원들은 급속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앞에 '희생양' 으로 던져진 것이 그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노스트라의 상어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짧은 순간, 테리어드는 그들의 눈에 전투욕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자신이 상대인 이상 헛된 꿈이었지만.

  능숙하게 그들의 총격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깨와 팔에 상처를 입혔으니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발걸음이 훨씬 빨라졌다. 도망치던 테리어드의 눈에 저격수가 눈에 들어왔다. 라스트 포인트가 이제 저 앞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그녀는 두 눈과 귀를 감고 그 자리에 엎드리고 앉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빛이 번쩍였는지 아닌지, 그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이상하네. 왜 총을 못 써? 기껏 사격장에 데려와 줬더니.


  투덜거리며 말한 것은 그녀의 선배 어소시에이트였다. 옆에서는 니콜라이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갓 조직에 들어온 테리어드의 교육을 떠맡은 그들은, 사격을 아무리 가르쳐 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테리어드를 보고 조금 기막혀 하고 있었다. 총을 잡은 채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몰랐던 테리어드는, 그저 '죄송합니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처음 사격을 배운 날 그녀는 발군의 재능을 보여 표적의 머리와 심장을 단번에 궤뚫는 위엄을 보였지만, 그날 밤엔 엄청난 구토와 고열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총을 든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떠오르고, 그녀가 총구를 자신에게 겨누는 모습이 떠오르고, 같은 총 때문에 이미 숨이 끊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남자가 떠올랐다. 땀에 흠뻑 젖어 침대에서 일어나 목을 상하게 할 정도로 강한 위액을 변기에 뱉어내고 몸을 씻은 다음,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다시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꿈 속에서 벨은 여전히 테리어드를 보고 울고 있었고 아서의 몸에서 나오는 피 냄새는 방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른 채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맞이한 아침, 테리어드는 총을 쏘는 자신을 상상만 해도 손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애초에 총을 사용 못하는 마피아라니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고. 알아듣겠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길은 너한테 안 맞아. 포기해.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강자가 되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으로 강자가 되기는 무리라니까? 실전에 투입하면 바로 목숨 날아가. 아서, 아서.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어.


  돌아가다니, 어디로?

  남자의 경박한 말투에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 병원을 떠나 언더 시티로 온 뒤 그녀에게 돌아갈 곳이란 이미 없었다. 벨의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아마 자신을 남기고 간 테리어드를 아직 원망하고 있을 테니. 그래서 테리어드는 주먹을 쥐고 자신이 갖고 있던 총을 남자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저는 총을 쓰지 않겠어요. 평생, 평생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뭐라고? 너 내 말 듣고 있었냐?

  -나이프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만큼 성장하면 된다는 겁니다. 두 분의 역할은 절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말했을 때 테리어드의 총을 받아든 남자는 어이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니콜라이만큼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아. 각오를 정했다니 다행이군. 오늘부터 지독하게 구르게 될 테니 각오하라고. ―라고 말하는 듯. 그리고 그 표정을 이해한다는 듯 쳐다보는 테리어드에게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억해둬, 아가씨 Kitty. 세상이란 살아남는 사람이…….







  "……살아남은 사람이 강자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테리어드는 너덜너덜해진 나이프를 바닥에 던졌다. 이제는 무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라스트 포인트는 완전침묵. 적어도 테리어드 자신이 끌어들인 헤니르 조직원들은 전부 그녀의 발밑에 시체로 변해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 뿐 아니라, 여태까지 죽은 노스트라 조직원들의 수에 필적하는 헤니르 조직원들이 죽어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티아. 담당하던 적들의 완전침묵을 확인했습니다. 저 외에 2명의 어소시에이트가 생존했습니다."

  #수고했어. 예정 집합 장소로 모이도록. 다음 분쟁 장소로 이동한다.

  "저어…… 카포, 다른 조직원들은?"

  #꽤 많이 죽었지. 하지만 솔져급 조직원들과 우리 집 고양이는 살아남았어. 다음 장소에서의 전력은 충분해.

  "……알겠습니다. 저희 세 명도 전투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금방 합류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강자다.

  그 말을 되새기며 그녀는 시체들을 밟고 걸었다. 죽는 것을 각오하면서 싸우고,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시체를 밟고 걸어가면서도, 그녀에게는 살아 있어 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있었다. 자기 자신의 목숨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그럴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에 그녀는 여전히 강자다.








  그리고 이것은, 어찌됐든 좋은 이야기.


  테리어드 W. 매저즈는 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따라 핸드폰으로 전송되어 오는 스팸 문자메시지에 반응해 볼 생각이 든 것은, 그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오늘 운명, 알아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헤니르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뒤부터 그들의 일은 정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특히 카포레짐 이상의 간부들이 아니라 자신 같은 선봉 담당 조직원들의 목숨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약하게 한 것일까.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다수의 전화 통화료를 감안하고 접속하자 랜덤으로 타로카드를 뽑아 운세를 알려주는 사이트가 나타났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뒤집힌 카드 밑에 있는 키를 눌렀다. 갑자기 카드가 빙빙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그 속도를 낮추어 정체를 드러냈다. 상세운세 보기를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녀는 핸드폰 전원을 껐다. 탑 위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 카드는, 덜도말도 할 것 없이 좋지 않은 카드였다.

  나중에 알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그 카드는 '끝이 없는 절망'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 카드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카드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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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紐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