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려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늦게 들어와 늦게 잠들었기 때문에,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몸의 솔직한 반응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불 속에서 손만 빼내 핸드폰을 잡은 그녀가 여보세요, 하고 말을 건넸을 때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재차 물었지만 역시 답은 없다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전화가 끊겼다. 잘못 걸려 온 전화인가? 아니면― 그녀의 시선이 방 구석에 쌓아 둔, 지독한 냄새를 내고 있는 장미 꽃다발에 닿았다. 바싹 말라버린 장미는 이제 썩어가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메시지 카드와 섬뜩한 꽃다발과 이제는 무언 전화인가?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공을 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쾌한 기분으로 물을 마시려 침대를 나오는데, 거실 테이블 위에서 자동응답기가 깜박이고 있는 게 보였다. 새 생수병을 따서 입술에 대고 응답기 재생버튼을 눌렀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메시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스 티아. 익일 오후 6시 30분까지 회사 건물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H' 와의 접촉에 관련하여 청문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자리를 비우거나 무단으로 이탈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는 변명도 불가합니다. 이것은 정해진 사항이므로, 불이행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02.


  "어머, 그게 웬 거야?"


  그날, 유난히 상기된 얼굴로 그녀는 꽃다발을 하나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손톱 색만큼이나 선명한 핑크빛의 장미 꽃다발이었다. 평소에 이 대기실에 꽃다발이 오는 경우는 가수인 그녀에게 바치는 꽃들 뿐이었으니, 스타일리스트인 그녀에게 꽃을 주는 사람은 몇 없을 터였다. 그야 제이나는 미인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남자도 많았겠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테리어드가 가진 가수라는 직업과 그 화려함에 늘 묻히기 일쑤였던 것이다.


  "혹시 애인이 주고 간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 사람, 요즘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이건 다른 사람."

  "흐응……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애인이 질투할 거야."

  "어, 어마, 내가 그렇게 기분 좋아 보였어?"

  "무척."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는 제이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테리어드는 가발을 고정한 핀을 떼어냈다. 그래도 바로 앞에 거울이 있어 제이나의 행동이 전부 보였다. 거울 너머에 비친 제이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 '애인'을 만나러 나갈 때나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이. 제이나는 아마 그 애인에게서 꽃을 받아본 일은 한 번도 없을 터였다. 테리어드는, 그 꽃을 준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와 이어지는 것이 제이나에겐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그녀를 배신자로 낙인찍는 비참한 현실로 이어졌을 때 테리어드는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생각했다.




        03.


  "어서 오게, 미스 티아. 가운데 놓인 의자에 자리하도록."


  콘실리에리의 무거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청문회라는 단어만 던져주고 남을 덥썩 부르다니 무슨 일일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 '청문 대상'은 테리어드 자신인 모양이었다. 이 사태에 대해 테리어드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재중 메시지는 청문회 내용이 'H와의 접촉'― 즉 헤니르와의 관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 테리어드에겐 짚이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방 안에 있는 것은 보스와 콘실리에리, 카포레짐을 포함해서 전부 테리어드보다 직급이 위인 간부들이었다. 솔져급 조직원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솔져 계급을 가진 테리어드에 대한 예의일 터였다. 어둠 속에서 류상의 모습을 찾으려 했으나 일부러 조명을 낮게 한 듯 테리어드 쪽에서는 그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반면 그녀가 앉아야 하는 자리는 조명이 뜨거울 정도로 밝아서, 상당히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테리어드는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지나치게 덤덤한 그녀의 태도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카포레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쩐지 결백해 보이지 않는가? 그런 내용이라면 좋을 텐데.


  "미스 티아, 어째서 자네가 이곳에 불려 왔는지 아는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청문회의 내용은 아는가?"

  "헤니르와 관련된 건이라는 것은 메시지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체 그것이 저와 무슨 관계가?"

  "건방지게 어디서 입을 놀리나? 질문은 우리 쪽에서 하네. 자네는 충실하게 대답만 하면 돼."


  콘실리에리의 재제가 있기 전에 카포레짐 쪽에서 불만의 말이 터져나왔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자 곧 불만도 잠잠해지고, 콘실리에리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가 헤니르 조직원과 사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네."

  "……예? 그게 무슨―"

  "제보자의 신분은 밝힐 수 없지만, 그가 말한 정보와 가지고 온 '증거물'의 신빙성을 높게 친다는 결과가 어제 회의에서 나왔어. 다만 이 건에 대한 자네의 변명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하는 게 옳다는 의견도 다수 있어서 이 청문회가 열리게 된 걸세."


  당황했다. 아까, 피고가 자신임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헤니르 조직원과의 사적인 접촉?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제보자? 증거물? 그녀의 머리가 혼란으로 치달았을 때 저 구석에서 에헴, 하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이나 느낌을 보아 그 소리의 주인은 류상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한 명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정신을 번쩍 차릴 수 있었다. 청문회에 참석하는 카포레짐의 호위로서 크루의 누군가가 이 장소에 따라왔다면― 류상의 크루에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솔져 계급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니콜라이 뿐이었다. 지금 여기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신을 노스트라에 천거한 그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로 마음먹고 주먹을 꽉 쥔 테리어드는 고개를 들었다.


  "제보자에 의하면 헤니르의 조직원이란 사람은 금발에 큰 키. 양복을 입은 여자였다던데. 그 여자는 두 번 정도, 혼자서 펍에 찾아왔고 자네에게 개인적인 접촉도 취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자네는 며칠 전, 그 여자를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사흘 동안 데리고 다녔다는데― 이하의 사실에 짚이는 바가 없나?"

  "……!"


  테리어드는 동요를 숨기려 애썼다. 짚이는 바―  물론 있다. 지금 콘실리에리가 말하고 있는 헤니르의 조직원이란 이해린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헤니르의 관계자이자, 몇 번을 마주했지만 결국 죽이지 못한 상대. 그 여자가 헤니르의 조직원이었던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지금 상황이 무척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물론 테리어드는 그녀를 통해 헤니르와 접촉한 적이 없을뿐더러 노스트라를 배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딜 봐도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 해린이 헤니르의 관계자임을 알면서도 보디가드로 고용했다는 상황은―


  '……당했다.'


  어떤 말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끝이 없고, 꼬투리를 한 번 잡혔다가는 그 시점에서 유죄 확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그 사실을 긍정해도 유죄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을 늦게 하면 할수록 좋지 않은 이미지를 쥐어줄 수 있다. 신중하게 대답을 고른 뒤, 테리어드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저는 상대가…… 헤니르의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제보자는, 자네와 그 여자가 싸우는 장면을 봤다고 하네."

  "제게는 적이 많습니다. 노스트라의 미스 티아로서 죽인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관계자도 많습니다. 제 외양이 눈에 띠는 덕분인지 그 중에서 제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무척 많다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그 여자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일 각오로 싸우는 사이였습니다. 그 날 그 여자가 펍에 찾아온 것은 결판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네가 그 펍에 다니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그 여자는 펍 근처에 잠복하다가 제가 펍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은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제게 접근하여, 결투를 원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상대해 준 것뿐입니다. 다만 죽이기 전에 결투가 중지되었고, 그 대가로 그 여자는 사진을 태웠습니다. 필름은 제 손에 있으며, 아직 처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에 그 여자를 경호원으로서 고용한 건 어째서지?"

  "그것은……."


  그건, 해린과 테리어드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테리어드의 타겟은 해린의 경호대상이었다. 그러나 12시 종이 울리면서 둘은 결착을 내지 못했다. 그 다음 만남은 파티장이었었지. 노스트라의 주주 대리로서 온 것이라 험악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그 다음 해린이 펍에 찾아와서 사진을 빌미로 그녀를 협박했고, 이에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테리어드는 우연히 들어온 해린의 지갑을 가지고 해린을 협박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상대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그 정도의 관계였다. 그들 사이에 있는 것은 증오와 자존심 싸움 뿐, 어떤 감정도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하면 신뢰일까. '상대는 나의 정체에 대해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신뢰.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해린을 굳이 보디가드로서 고용한 건 그런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다만 그것은 상대에 대한 살의와 등을 진 신뢰일 뿐이었다.


  "최근 제게…… 아니, 펍의 가수에게 따라다니는 스토커를 퇴치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제게는 직속 어소시에이트도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조직고 관련된 일이 아니면 조직의 인력을 끌어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반면 그 여자는 사설 경호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용한 것뿐입니다."

  "상대가 자네를 죽이려 들 거라곤 생각 못 한 건가?"

  "적어도, 의뢰로 묶여 있는 동안에는 목숨의 위협은 없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 여자와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도 그 여자는 의뢰 기간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의뢰인을 가차없이 버렸습니다. 그러지 않고 계속 맞서 싸웠다면 전 그 임무를 온전히는 수행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여자는 그런 인간입니다."

  "호오, 상대를 믿었다 이 말인가? 거 참 눈물나는 이야기로군. 동양에선 그런 걸 인의라 한다지? 자네는 그렇다 치고, 고작 헤니르의 조직원 주제에 그런 걸 충실하게 지키는 인간도 다 있었지 뭔가. 상대가 그런 사람인 걸 잘 알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 아닌가, 그건?"


  카포레짐 사이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까부터 테리어드의 유죄가 명백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상대가 있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대임은 분명했다. 여성으로서 솔져의 자리에 오른데다 노스트라 내에서 꽤 신임을 받고 있다보니 반감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차마 위 직급의 인간에게까지 경계당할 줄은 몰랐다. 테리어드가 살아 있으면 제 자리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는 머저리가, 설마 존재했다는 말인가?


  "세 번이나 본 사람에 대해서 판단을 못할 정도로,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습격을 당한다 해도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서 보디가드를 고용했나?"

  "스토커가 붙은 상대는 제가 아니라 펍의 가수입니다. 저는 가수로 있을 때만은,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뿐 평범한 여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떤 대책도 취하지 않는 게 납득이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 는 추측도 가능하며, 그런 식으로 파헤치다 보면 펍 뒤에 노스트라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날 수 있기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상대가 자네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은가. 노스트라의 조직원이 그 펍에서 노래부르는 여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펍이 노스트라와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건…… 제 불찰입니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한 사과의 말에 고함을 질렀던 카포레짐이 조용해졌다. 설마 이 타이밍에서 사과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변명이 서툴러질 것 같으면 솔직히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테리어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이것으로 판도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테리어드를 다시 콘실리에리의 말이 막아섰다.


  "그러니까, 문제의 여자와 자네 사이에 호의가 오갈 만한 여지는 전혀 없다는 말인가? 확신할 수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콘실리에리가 슬쩍 눈짓을 가하자, 어둠 속에서 한 명의 남자가 파일을 하나 가지고 왔다. 파일 속에는 두 장의 익숙한 쪽지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해린의 단정한 글씨로 쓴 신청곡 쪽지. 자신이 불러준 두 개의 곡. 쪽지가 없어진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 '제보자'는 이것을, 해린과 테리어드 사이에 호의가 오가고 있던 증거라고 주장한 게 분명했다.


  "자네는 상황이 자네에게 지극히 불리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군. 신빙성 있는 증언과 증거가 갖춰져 있어. 발뺌할 수 있는 상황 같은가?"

  "……저는 이것이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몬도 카네의 가수로서 서면, 저는 신청곡이 그 어떤 노래든 부릅니다. 거기 적혀 있는 메시지 따위는 일일히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누가 신청한 곡인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 곡명 정도는 기록합니다만."

  "그래서, 이 두 곡이 그 여자의 신청곡임을 부정할 셈인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곡을 신청한 사람이 그 여자인 걸 안 건 둘 다 그 여자 쪽에서 자신을 알려왔기 때문이지 알고서 부른 게 아닙니다. 게다가 이게 어떻게 '호의의 증거'가 되는지 궁금하군요. 그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곡을 고르고, 제게 건넸는지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가수는 신청이 들어온 곡을 충실히 부를 뿐이니까요."


  정적이 찾아왔다. 아마 청문회 측에서 내세울 증거는 이게 전부일 것이다. 그 외에 해린의 흔적은 그 무엇 하나 테리어드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다고 하면 해린이 남기고 간 필름뿐이지만, 그 필름은 어디서 숨어 찍었다는 걸 선명히 알 수 있었기에 오히려 테리어드 쪽에 유리한 증거였다. 그걸 알기에 그 '제보자'도 필름까지는 훔쳐가지 않았으리라.


  "자, 이쯤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 쪽지 두 장이 내통의 증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한데요. 아마 저걸 받은 날, 미스 티아는 저와 함께 내통자를 잡아내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날 자기도 헤니르의 조직원과 내통을 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류상의 반론에 정적이 깨졌다. 그의 목소리엔 이 상황이 지극히 재미없으며,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없다는 의지가 제대로 박혀 있었다. 그 결단이 테리어드로서는 상당히 고마웠다.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자신을 유죄로 몰려 한다면 남은 길은 해린의 모든 정보를 털어놓고, 그녀를 이리로 불러 대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해린 사이에 쌓인 '신뢰'는 테리어드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결국 남은 길은 '신뢰'를 지키고 죽는 것밖엔 없었던 것이다.


  "연막작전이었을 수도 있지요. 듣자하니 그 내통자란 것들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소 조직에서 파견한 놈들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 놈들은 넘겨주고 자기가 정보를 전달하는 게 더 나을지도……."

  "그러니까 미스 티아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확신하냔 말입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미스 티아는 저희가 제시한 증언, 증거에 대해서 충실하게 대답했습니다. 청문회의 의미는 거기서 끝나고, 나중에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에야 처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군요. 이런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처음엔 다들 못 믿었을 정도로 그녀는 노스트라에 충직했습니다. 물론 제 크루에 속한 솔져라 이렇게 말하는 건 좀 부끄럽지만요."


  마지막 류상의 말로 콘실리에리의 표정은 바뀌었다. 확실히, 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아까부터 아무 말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보스― 가이의 입이 열렸다.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그리고 그 공간을 전부 지배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네, 미스 티아. 만약 자네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 순간 테리어드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이자 최후의 기회임을 알았다. 그녀는 가이의 얼굴만 바라보며, 자신의 살의를 숨기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죽일 생각입니다."




        04.


  그들의 관계에 종언을 찍은 사람은, 사실 테리어드가 아니었다. 가계 장부를 작성하면서 눈치 챈 횡령과 몬도 카네에서 맡고 있던 조직의 일―간부들의 사교장과 회의장을 제공하는 일―이 밖으로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테리어드가 조금 미심쩍게 여기고 있을 때였다. 테리어드가 분장을 하기 전에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은 점장인 비트였다. 그는 두 손을 꽉 모으고, 뭔가를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제이나가 사귀고 있는 남자 말인데…… 그 남자의 건축 사무실에 헤니르 간부들이 몇이고 드나든다는 정보입니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제이나가 이곳의 정보를 빼가고 돈을 횡령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05.


  "늦은 밤 불러내서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그런데, 미스 티아가 절 부르시다니 뜻밖이네요……."


  청문회장을 나와 같이 식사하자는 류상의 제안도 뿌리친 채, 테리어드는 몬도 카네의 점장인 비트 레이어를 불러냈다. 뭔가 초조하고 긴장한 얼굴로 나온 그는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테리어드의 시선을 자꾸 피하려고 했다. 그것이, 이미 확실한 그의 '배신'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오늘 노스트라의 청문회에 다녀왔어요. 내가 헤니르와 내통하고 있다고 제보한 자가 있다더군요."

  "……."

  "나는 그게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여 내게 말라붙은 장미꽃이나 그 메시지 카드를 보낸 사람도 당신이라고 생각해요.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해 주겠어요?"


  그 장미 꽃다발을 이상하게 여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처음 그 꽃다발을 받았을 때 꽃을 수거해 오는 역을 맡은 비트가 '쓰레기' 라 판단하지 않은 점. 두 번째, 몬도 카네의 문을 잠시 닫자마자 '보낼 필요가 없다'는 듯이 꽃다발이 오는 것이 끊긴 점. 그건 가수 벨을 비뚤어진 방법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보낸 것이라기보다는, 테리어드에 대해 잘 알고 그녀의 가까이에 있으며 직접적으로 그녀에게 꽃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보낸 것이라는 증거와도 같았다. 신청곡 쪽지를 훔치는 것도 그렇다. 언제나 그날 받은 신청곡은 대기실에 같이 뒀다가 가지고 가지만, 비트라면 대기실을 제 집 드나들듯 왔다갔다하니 해린의 신청곡 쪽지만 빼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해린이 처음 몬도 카네에 왔을 때, 그녀와 해린이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도 비트였다. 이쯤 되면 그를 의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으나, 그 결론을 테리어드가 여지껏 내리지 않고 있던 것은 비트 레이어라는 남자를 어느 정도는 믿었기 때문이었다.


  "대답하세요. 왜 내게 이런 짓을 했죠?"

  "……."

  "부정할 생각이라면,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당신을 구속할 수박에 없어요. 오늘 청문회에선 '보류'라는 결말이 났어요. 무죄를 증명할 수 없다면 나는 죽습니다. 하지만 노스트라의 조직원으로서,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죽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리고, 자신을 죽일 자격이 있는 사람의 손이 아니면 죽어줄 생각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때였다. 테리어드는 비트가 품속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는 것도, 그것이 불을 뿜어 자신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간 것도, 불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비명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는 테리어드를 보고 비트는 어디까지나 냉혹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권총을 든 그의 손은 오히려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다,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요. 기왕이면 노스트라의 손으로…… 배신자라는 명목 하에……. 하지만, 보류라면, 그리고 내가 꾸민 일이라는 걸 들켰다면― 할 수 없어도, 내 손으로……."

  "어째서……?"

  "적어도 내 손으로…… 그녀의, 원수를……."


  배신자. 그녀. 바싹 마른 핑크빛 장미 꽃다발. 단어와 사람의 얼굴과 있었던 일들이 머리를 휩쓸었다. 당신, 하고 테리어드는 말끝을 흐렸다.


  "제이나의 복수인가요……?"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남자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방아쇠를 더 당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날, 제이나에게 꽃다발을 준 사람은― 이 남자였던가. 순박하고 남을 속일 줄 모르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라면, 아마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말로 제이나에게 마음을 전했으리라. 그녀가 연인이 있는데도 꽃을 받고 좋아했던 건 그런 이유인 것이다.


  "당신이, 당신이라면, 그녀를 구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속고 있는 것뿐이니까, 절대로 구해줄 거라고…… 도와줄 거라고…… 그런 남자와는 손을 끊고, 노스트라에 솔직히 사과하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는 식의…… 그런 처분이 내려질 거라고…… 그래서 당신에게 얘기했는데……. 그런데 당신은, 그녀를, 직접, 죽이고…… 그녀가 실려 나가는 걸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고……."

  "……그랬습니까."


  그토록 가까이 있었으면서, 빈틈을 수도 없이 보고 있었으면서, 해린의 손에 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으면서, 굳이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전부 배신자라는 이름하에 죽은 제이나 때문이었다. 같은 입장, 같은 상황에서, 같은 절망과 함께 죽는 것을 원했으리라. 제이나는 테리어드를 믿고 있었다. 아니, 가수 벨을 믿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거라고, 그렇게 굳게―

  그것이야말로, 해린과의 사이에 있는, 살의에 연결된 '신뢰'가 아닌 진짜 '신뢰'였다. 테리어드도 알고 있었다. 제이나가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만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테리어드에게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을 거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그녀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날 죽일 자격이 있군요."


  그녀를 무척 사랑했을 사람. 순수하게, 순수하게, 그녀에 대한 마음을 품고, 계속 살아왔을 사람. 고백해서 거절당했을 게 분명함에도 그 마음을 접지 못하고,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그녀를 구제해 주고자 했을 사람. 다만 의지할 곳을 잘못 찾아 비극을 벌이고 말았지만― 제이나 크롬데른이라는 여자, 테리어드에게 죽은 그 여자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그 사람. 그 남자가 지금 테리어드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다가, 테리어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신 뜻대로 처분될 생각은 없어요. 대신 당신이 날 쏘는 건 상관 없습니다. 총을 잡아요. 당신이 여기서 날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당신을 청문회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어요. 노스트라의 배신자로서 죽고 싶지는 않고, 내가 그렇게 죽는다면 분명 카포나 날 천거한 사람에게도 불똥이 튑니다. 그런 죽음만큼은 딱 질색이에요. 그러니까 복수를 하고 싶다면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요."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남자는 다시 총을 잡았다. 제 손과 테리어드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며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치켜 세웠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이를 악물었다. 흑, 윽, 흐윽, 울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고 눈물과 콧물이 남자의 얼굴을 더럽혔다. 테리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총알이 심장을 궤뚫을 것을 잠자코 기다렸다.

  이윽고 탕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았다.




        06.


  "축하하네, 미스 티아. 무죄 확정이군. 곤란한 일에 끼어들게 되어 고생꽤나 했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카포. 제 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말했지. 나는 자네를 믿는다고. 그리고 정말로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 다음 날, 콘실리에리에게 류상으로부터 은밀히 자료가 전달되어 왔다. '제보자'와 테리어드가 만나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이었다. 옷에 묻혀 있어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음성은 확실하게 '제보자'가 테리어드를 함정에 빠트렸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증언과 증거가 신빙성을 잃은 순간 테리어드의 혐의는 사라졌고, 위협적인 솔져를 한 명 해치우려 했던 노년 카포레짐의 허무한 욕심도 사라졌다. 콘실리에리의 입으로 무죄가 선언됐음을 알리러 온 류상은, 테리어드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눈치 채고 의아하게 여기는 듯 했다.


  "설마 제보자가 헤니르와 내통하고 있었다니 몰랐어."

  "……저도 그렇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테리어드에게 총을 들이댔던 비트는 방아쇠를 당기기는 했으나 그 총알이 그녀의 몸에 맞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총알은 테리어드의 뺨에 작은 상처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고개를 떨군 비트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경박한 말투를 쓰는 남자가 등장해, 그녀를 죽이지 못한 남자를 매도했다. 노스트라의 상어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해서 가짜 스토커까지 준비해 줬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슬프게, 슬프게 결정했다.


  -그 메시지 카드는 당신이 보낸 건가요?

  -아아, 그거? 멋진 러브레터였지? own 소유하다 을 kill 죽이다 로만 바꿔주면 내 진심이 되지.


  I love you. I want to kill you myself.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바로 내가 죽이고 싶어요.

  메시지의 문구를 떠올린 순간 테리어드는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움직였다. 부상은 입었지만, 그래도 아무 문제 없을 정도로 상대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이런 흉계를 꾸밀 정도니 당연했겠지만, 정면승부에는 지극히 약한 상대였던 것이다. 나이프가 번쩍였을 때 경박한 남자의 목숨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피 묻은 나이프를 잡고 비트의 앞으로 돌아온 테리어드는, 그의 손에서 떨어진 권총을 압수했다. 그리고 나이프를 그에게 들이댔다.


  -유감이군요. 당신이 그저 '개인적으로' 날 죽이러 왔다면 죽어줬을 텐데…… 하필이면 헤니르의 손을 잡으려 했다니. 정말 유감이에요.


  "그래서 그 제보자는 어떻게 됐어?"

  "……노스트라의 룰에 따라, '내통자' 로서 처리했습니다."

  "헤에, 죽인 거구나. 그렇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심지어 한 번 죽어줄 생각까지 했던 남정네를 말이지……. 자네는 정말 대단해. 아니, 비꼬는 게 아니라 칭찬이야."


  망연자실한 비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심장에 나이프를 꽂아넣었을 때, 테리어드는 아주 잠깐이지만 후회했다. 비트를 죽여 버린 것이 아니라, 제이나의 심장을 찌를 때 쓴 나이프를 그녀의 관에 넣어줬던 것을. 제이나를 죽였던 것과 같은 나이프로 생을 마감했더라면 이 욕심 없는 남자는 좀 더 행복하게 웃었을지도 몰랐다. 눈물 범벅이 된 남자의 얼굴을 옷깃으로 닦아주면서, 테리어드는 '일상'이 끝나버릴 기회를 놓친 것을 아주 잠시, 슬프다고 여겼다. 그러나 생존 본능이란 것은 이런 상황에도 남아 있는 것이어서, 테리어드는 증거를 잡으려고 가지고 갔던 녹음기를 그대로 류상에게 제출했다. 비트의 시체는 화장되어, 뼈가 집으로 날라져 왔다. 제이나의 무덤은 언더 시티 내에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땅이라도 작게 파고 묻어줄 생각이었다.


  "이번 건으로 자네 오히려 인지도가 올랐어. 보스나 콘실리에리께서 많이 기대하고 계시던데. 자네에 대해서. 그 뭐더라? 청문회 마지막에. '이번에야말로 죽일 생각입니다.' 였던가? 그게 아주 큰 임팩트를 남겼어. 다른 카포레짐들도 자네에겐 두손 두발 다 든 모양이던데."

  "과찬이십니다. 전 진심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진심의 상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건가?"


  무죄를 증명받은 이후, 테리어드는 그 헤니르 조직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하라는 콘실리에리의 요구를 들었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비틀어진 '신뢰'만큼은 배신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경호원 연락처로 알고 있던 것은 핸드폰을 폐기했는지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콘실리에리는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해린이 헤니르의 조직원이라는 정보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진 이상 그 정보에 대해 알아둘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제 진심이 남에게 전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걸요."

  "하하하. 새로운 태클 방법인가? 로맨틱하게 받아친다는 작전? 괜찮은걸? 새로운데? 뭐…… 내가 굳이 상대가 누군지 몰라도 자네가 알아서 죽여줄 것 같으니 괜찮겠지. 대신 또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물론입니다, 카포.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일에선 정말 신세를 졌습니다."

  "나만 자네 편을 든 것도 아니니 나한테만 감사하다고 말하면 곤란한데. 뭐, 다른 카포들에겐 내가 잘 말해두지. 애초에 이런 쓸데 없는 청문회, 내 힘으로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귀찮았지?"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카포께 염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저, 그래서 말인데, 이 일은 공론화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카포와 저만 알고 있는 것으로……."

  "그래, 떠들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지. 어소시에이트들한테도 체면이 안 살고 말야. 아, 그런데 우리 집 고양이는 이미 아는데 어쩌지?"

  "……와일드캣에게도 함구령을 내려두신다면 저는 괜찮습니다."

  "아, 그래? 그거 다행이군. ……하긴, 자네가 알리고 싶지 않은 상대는 따로 있겠지."


  씩 웃으면서 류상은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긴 채 먼저 자리를 떴다. 텅 빈 회사 로비에 서서, 테리어드는 류상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굳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그라면 입을 다물어줬을까? 그랬을 것이다. 괜히 자신의 카드만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나이프― 어제 비트의 심장을 찔렀다 나온 그 나이프가, 왠지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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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紐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