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
총은 싫다.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도, 방아쇠를 당겼을 때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머리에 구멍이 뚫린 것 외엔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시체도. 시체라면 시체답게, 정말로 죽은 것처럼, 그렇게 잔인한 모양이었으면 했다. 바닥에 널부러진 아서의 시체를 보았을 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시체 앞에서 멍하니 눈물만 흘리고 있는 벨을 봤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무릎을 꿇었다. 짙은 피 냄새와 바닥에 흩어진 오물과 벨의 눈물이 속을 뒤집어놨다.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에 벨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나는 그녀가 쥔 총이 언제 나를 향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서만큼이나 나를 죽이고 싶었으리라.
엄마 Mom.
떨리는 목소리로 그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 벨은 무너져 내렸다.
〃
"벨, 벨? 집에 가야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테리어드는 눈을 떴다. 제이나는 순진하게 웃고 있었다. 뭣 때문에 잠을 그렇게 오래 자? 어제 잠 설쳤어? 순수하게 웃는 그녀는 테리어드의 의상 담당이었다. 가발까지 벗고 잠들 거였으면 옷을 갈아입지. 자, 갈아입어. 테리어드는 제이나의 손에서 옷을 받아들었다. 그녀에 대한 진실을 알았을 때 테리어드는, 세상이 뭔가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이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제이나는 여전히 귀엽게 웃고 있었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옷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무릎에 올려둔 가발을 들었다. 하나의 밧줄처럼 땋아진 가발을 보고 제이나가 눈을 굴렸다. 어머, 벨. 가발은 왜 땋았어? 웨이브라면 내가 넣어 줄 텐데. 그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는 그녀는 테리어드가 가질 수 없었던 소녀다움과 귀여움을 지니고 있는 스물셋의 처녀였다. 돈을 모아서 시티 밖에 계신 어머니에게 부칠 거야. 그거 알아? 그 돈으로 내 동생이 학교에 들어간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녀가 털어놓는 꿈들은 테리어드에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테리어드는 고개를 들어 제이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제이나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제이나.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급한 얘기가 아니면, 내일 해주면 안 될까? 나 이제부터 그이와 식사라서. 알지? 전에 네 노래 들으러 왔었던―"
"건축 기사이자 헤니르의 간부인 스프링 말이지. 알고 있어."
조직의 이름이 나오자 제이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천진난만하던 두 눈에 어린 것이 공포임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리어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대에 설 때 신었던 10cm짜리 하이힐을 신은 그대로였다. 160cm도 채 안 되는 제이나는 머리 바로 아래에 있었다. 팔을 뻗어 어깨를 잡자 흠칫 떨었다. 제이나. 그렇게 부르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으, 응……? 굳어진 그녀의 얼굴을 향해 테리어드는 최후의 선언을 해버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는, 남자에게 빠져서 친의를 배신하는 사람이야."
테리어드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발을 빠르게 제이나의 목에 휘어감았다. 컥, 하는 단말마 비슷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밝았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려갔다. 두 눈이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입에서 침이 흘렀다. 그 귀여웠던 얼굴이 악몽으로 물들어가는 걸 보면서도 테리어드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힘을 주어, 졸랐다. 컥, 큭, 커헉……. 신음을 흘리던 제이나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되고 나서야 테리어드는 그녀의 목에서 가발을 풀어헤쳤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제이나는 어깨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 당연하다. 즉사하지 않을 정도로만 졸랐으니까. 그녀의 앞에 몸을 굽히고 앉자 떨리는 손이 어깨를 잡았다.
"미안, 총으로 단번에 끝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총을 쓸 줄 몰라. 쓰고 싶지도 않고."
"어…… 어으…… 어떻게……."
"원래대로라면 너는 조직으로 끌려 갔어야 했어. 하지만 보스께서 인정을 베풀어 주셨지. 난 널 내 손으로 죽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걸렸다면 네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몰라."
"시, 싫어…… 살려, 커헉, 줘……."
테리어드는 벌어진 드레스 틈으로 손을 넣었다. 다리에 차고 있는 벨트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오직 제이나를 위해 어제 새로 산 물건이었다. 곧게 뻗은 칼날과 칼자루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꽤 고급품인 나이프였다. 기억나, 제이나? 내 대기실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왔을 때, 너는 다이아몬드에 깔려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는다면 원이 없을 거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골랐어. 테리어드는 손을 뻗어 제이나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너는 울면 예쁘지 않아.
"Good Night, 제이나. Sweet Dream."
그 작은 목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새빨갛게 물든 장갑을 벗고,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는 티슈로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티슈를 몇 장 더 뽑아 얼굴에 칠한 분을 거의 다 벗겨냈을 때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스 티아,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들어온 서너 명의 남자들은 손에 침낭을 하나 들고 있었다. 두 명이 침낭 안에 제이나를 능숙하게 옮겨담았다. 그들의 리더격 되는 사내가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수고랄 것도 없었다. 반항조차 할 수 없는, 가련하고 나약한 여자였다. 힐을 벗고 제 옷을 챙겨든 다음 옷을 갈아입는 칸으로 들어갔다. 가슴을 꼭 조이는 드레스는 답답했다. 그러나 드레스를 벗었어도 답답함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이상했다. 사람을 죽여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더욱.
노스트라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자일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노스트라 조직 소유 펍에서 일하는, 한 싸구려 가수의 화장을 전담해 주는, 솜씨 없고 가난하고 돈에 고픈 여자라도 묵계를 지켜야 할 의무는 있었다. 제이나에게 다리를 절어 더이상 일할 수 없는 노모와 대학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남동생이 있다는 것도, 그들의 생계가 오직 그녀가 벌어오는 돈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가족들에게 실종으로 처리될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은 노스트라에서 단 1g의 가치도 갖지 못할 것이다. 단지 이용당했을 뿐이니 노스트라에게는 간부들의 정보를 일부 전달받았을 헤니르의 조직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노스트라의 이름 아래 운영되는 펍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그녀는 노스트라에서 일하는 여자였고 노스트라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테리어드는 제이나를 죽였다. 조직의 명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을 죽였다. 제이나를 싫어한 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호감과 연민을 지니고 있었다면 모를까. 제이나가 배신자이니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분노나 살의가 끓어올랐던 것도 아니었다. 미소가 밝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이 거리 어디에나 있는 보통 아가씨. 그래서 많이, 좋아했었다. 자신에게는 갖지 못한 것을 많이 갖고 있었던 처녀를 아꼈다. 그런 상대라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니 여인은 테리어드를 죽였어야 했다. 젊었을 적 자신의 모습을 빼닮은 딸, 그 모습으로 제 아비를 홀리고 제 행복을 빼앗아가고 이제는 제대로 된 정신까지도 유지할 수 없게 만든 궁극적인 원인을, 총 한 방으로 정리해 버릴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그때 테리어드는 자신을 방어할 수단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한 명의 가엾은 소녀였으니까.
"미스 티아, 차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천막 밖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귀찮았다. 셔츠 한 장에 팬츠만 입고 막을 젖히자 걱정스런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그렇게 요구하자 남자는 바로 선글라스를 썼다. 다들, 다들 그랬다. 벨이 자신의 남편을 쏘아 죽이고 미쳐버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테리어드를 동정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밝혀지고 나서도 그랬다. 어떻게 저런 짐승 같은 놈이, 괜찮니, 아가? 벨도 가엾지, 어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제 자식이 보는 앞에서 어떻게……. 걱정과 동정, 경멸 섞인 말을 들으면서 테리어드는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시선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서와 내가 가해자라면,
벨은 피해자인데.
테리어드는 가발을 집었다. 땋은 머리를 고정시켜 뒀던 끈을 풀자 검은 머리카락이 사르르 손에서 떨어졌다. 평소에는 가발이 흐트러지면 언제나 제이나가 빗어줬지만, 오늘부터는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가발을 마네킹 얼굴에 걸어놓고 테리어드는 고개를 들었다. 거울 너머로 아직도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귀찮아. 그 때문에 그녀는 일부러, 평소보다 훨씬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을 끝내면 택시로 돌아갈 테니 흔적이나 제대로 처리해줘요."
"아, 알겠습니다."
남자가 허겁지겁 대기실을 나가고 나자, 테리어드는 혼자 남았다. 그날과 마찬가지로 피 냄새와 오물 자국이 선명한, 탁한 공기였다. 창문조차 없는 작은 방. 불만 끄면 어린 시절 자신의 방과 똑같을 것 같았다.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벨이 앉아 있었다. 권총을 꼭 쥐고, 자기 무릎 바로 앞에 쓰러진 아서를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테리어드는 빗을 집었다. 가발을 빗어내렸다. 제이나의 반항의 흔적이 몇 올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계속 가발을 빗겼다. 가발은 단정하고 깔끔한 윤기를 되찾았지만 테리어드의 얼굴을 비춰줄 수는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쪽 눈에서 나와 볼을 타고 흐르는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기회가 없어진 셈이었으니까.
벨, 왜 나를 쏘지 않았어?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에게,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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