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7.
火神大我x黒子テツヤ
윈터컵 결승전이 끝났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자축연을 열며 기뻐한 지도 어느새 사흘이 지나, 세이린 고등학교 농구부는 언제나의 분위기로 돌아가 있었다. 겨울방학 내내 진행되는 혹독한 연습은, 감독인 아이다 리코의 일침-“우리가 우승하기는 했지만, 내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법은 없어! 모두들, 이번 승리는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도록 해!”-과 함께 시작되었다. 덕분에 농구부의 사기는 다시 잡혔고, 그것은 부원들을 위해서는 당연히 최선의 선택이었다. 덧붙여서 이번 시합에서 후보로 머물렀던 1학년들은 이번에야말로 스타팅 멤버에 들어가겠다며 연습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후리하타 코우키가 그랬다. 윈터컵 준결승과 결승이라는 큰 시합에 두 번이나 나갈 수 있었던 그는, 오히려 그 경험으로 자신의 실력이 아직 모자라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쿠로코 테츠야는 패스 연습에 매진하며 PG로서의 실력을 키워가는 그를 위해 후리하타와의 콤비 연습을 하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쿠로코 테츠야 본인을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후리하타 군, 아직도 패스 타깃 찾는 게 늦어! 다시 한 번!”
“히이익, 네에!”
리코에게 한 소리 듣고 절로 몸을 움츠리는 후리하타를 보고 싱긋 웃다가, 쿠로코는 문득 팀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지금 세이린 고교 농구부는 평균 신장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우선 팀의 기둥이었던 키요시 텟페이가 무릎 치료를 위해 팀을 잠시 떠났고, 그보다도 더 듬직했던 에이스가 지금 연습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있었다면 제아무리 팀플레이에 서툰 후리하타라도 한 번쯤은 패스를 성공시킬 수 있었으리라.
카가미 타이가는 일주일 전부터 체육관 출입을 금지 당했다.
일단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었다. 윈터컵 결승전에서 명실공히 고교 최강인 라쿠잔 고등학교 농구부에 맞서 고군분투한 끝에 카가미는 체력 저하와 심각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점프에 꼭 필요한 무릎 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리코는 ‘한동안 휴식을 취할 것’ 이라며 카가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만약 경고를 어기고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개인 연습을 한다면 사타구니를 걷어차 주겠다는 협박에는, 제아무리 카가미가 농구바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해도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주어진 일주일의 휴식- 그랬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너라면 어떡할 거냐, 쿠로코?”
카가미에게서 그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카가미가 연습중지 명령을 받은 지 이틀쯤 지났을 때였다. 평소처럼 연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카가미의 전화를 받은 쿠로코는 그가 털어놓은 사정에 표정을 굳히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수화기 너머의 카가미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쿠로코는 거울에 비친 제 찌푸린 표정을 보고서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려 했다.
“왜…… 그런 걸 제게 묻습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감출 수 있던 것은 표정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나와 버린 차가운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의 카가미를 무척 당황하게 만들었음이 틀림없었다. 아, 그게. 말을 멈춘 카가미가 제 반응에 놀랐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는 것도 빠르게 알아차린 쿠로코는 황급히 목소리를 바꾸었다.
“만약 저라면 평생 가도 그런 얘긴 못 들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제게 상담이라니…… 약 올리는 건가요?”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어, 음…… 미안해.”
바보입니까, 너는. 대체 뭘 사과하고 있는 건가요. 쿠로코는 주먹을 쥐었지만, 그것은 카가미에 대한 분노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카가미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었더라면 그를 대하기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뭐, 장난이지만요.”
“엥? ……야, 쿠로코! 너 진짜!”
“미안합니다. 카가미 군이 너무 진지하게 나오기에 그만.”
“너 진짜 성격 나쁘다…….”
“그래서, 그 건 말인데요. 카가미 군에게 주어진 기회니까 카가미 군이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쪽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보고, 무엇이 정말 카가미 군을 위한 일인지 생각해보도록 하세요. 좋은 결정 내리리라고 믿습니다. 그럼 전 이만 쉬어야 해서. 끊을게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전화를 황급히 끊어버린 이유를, 카가미는 아마 죽어라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머리를 감싸 안고 쿠로코가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카가미에게 조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쿠로코 테츠야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생각으로 행동을 취하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행동을 정하는 쿠로코 본인이 제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카가미가 둔하다거나, 멍청하다거나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늘 덤덤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 어려운 제 특유의 표정 속에 쿠로코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는 했다. 그것은 무슨 일에서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쿠로코 테츠야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만사에 진지한 미도리마 신타로나 모든 일에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아카시 세이쥬로만큼은 아니었어도 쿠로코는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마다 늘 공정하고 이성적이기를 바랐다. 그럴 때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그의 ‘빛’ 들이 그를 더욱 신뢰하고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쿠로코 테츠야의 버릇은, 자신의 현재 파트너이자 연인이기도 한 카가미 타이가가 미국의 청소년 구단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는 이 사실 앞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너는 그 성격 때문에 언젠가는 손해를 볼 거야, 쿠로코.」
그를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하지만 걱정하는 기색은 감추지 않은 채 아카시 세이쥬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요, 아카시 군. 정말 맞는 말입니다.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게로 날아온 공을 빠르게 후리하타 쪽으로 쳐냈다. 너무도 갑작스런 패스 중계에 볼을 떨어뜨리고 만 후리하타가 리코에게 크게 혼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연습하러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아오미네 군.”
그런 권유를 하며 나타난 쿠로코 테츠야를 보고, 아오미네 다이키는 정말로 지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전까지 제가 읽고 있던 잡지를 얼굴 위에 얹어놓았다. 너하고 할 얘기 없으니까 그만 좀 가라- 라는 의사임을 쿠로코가 모를 리 없었으나, 그는 완고히 아오미네의 얼굴에서 잡지를 치웠다. 사람이 말할 때는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 그런 잔소리에 아오미네는 또 아무 말 없이 쿠로코에게서 잡지를 빼앗으려 들었다. 물론 누워 있는 아오미네에 비하면 아직 쿠로코의 반응이 더 빨랐다. 볼 컨트롤 요령을 살려 잡지를 왼손으로 옮긴 쿠로코는 그것을 바로 옥상 저편으로 던져버리려 했으나, 돌연 몸을 일으킨 아오미네가 쿠로코의 손을 떠난 잡지를 빠르게 낚아챘다.
“아직 멀었구만. 너, 이게 볼이었으면 1점 뺏겼다.”
“그렇군요. 아오미네 군의 말이 맞습니다. 멋진 인터셉트였어요. 그러니까 이제 체육관으로 돌아가서, 공으로 한 번 더 해 보죠.”
“흥미 없어.”
“아오미네 군…….”
“내게서 공을 뺏지도 못하는 녀석의 말은 듣고 싶지 않은데.”
“그건…… 제 임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오미네 군 같은 선수의 역할이죠.”
“비단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약해 빠졌잖아. 해봐야 재미도 없어.”
“그런…… 바보 같은 소리도 적당히 하십시오. 키세 군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고, 1대 1에서 아직 아카시 군을 이겨보지도 못했잖아요. 안 그래도 아오미네 군을 데려오면 아카시 군이 3대 3 연습시합을 꾸려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봐야 그 녀석들 전부 어차피 같은 팀이잖아.”
알고 있었다. 아오미네 다이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는 진검승부 속에서 자신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진짜 라이벌을 원하고 있었다. 자신을 이기겠다고 발버둥치는 키세 료타도, 절대적인 승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아카시 세이쥬로도 지금 상태로는 그의 무력함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쿠로코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1대 1, 3대 3 등은 아오미네의 무료를 일시적으로 달래줄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쿠로코 테츠야는 그 일시적인 달램조차도 아오미네에게 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때의 쿠로코 테츠야에게는, 아오미네 다이키를 설득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있는 것은 그저 소망뿐. 아오미네 다이키와 함께 농구를 하고 싶다고 하는, 쿠로코 테츠야 개인의 욕심뿐이었다.
그리고, 쿠로코는 그런 것을 말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 이만 가겠어요. 하지만…… 농구가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같이, 농구하고 싶어요.
“계속 기다릴 테니, 꼭 와줘야 합니다.”
조금 더 같이, 아오미네 군과, 농구를-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가. 못 자겠잖아.”
그러나 결국 쿠로코는 그런 본심을 아오미네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다시 잡지를 얼굴에 덮는 아오미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옥상을 터덜터덜 나와 아무런 수확 없이 체육관으로 돌아온 쿠로코를 맞이하며, 아카시는 무슨 말을 해도 아오미네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쿠로코의 침울한 말에 후우, 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억지로라도 끌고 오지 그랬어. 아오미네와 같이 농구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그건 단순한 어리광입니다. 그런 걸 말할 수는 없어요.”
“때로는 그런 어리광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완벽히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일시적인 방편으로 설득해 봐야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잖아요. 아카시 군도 그걸 아니까 아오미네 군을 설득하는 데 나서지 않는 거고요.”
“나와 네 입장은 완전히 달라, 쿠로코. 나는 주장이고, 코치가 아오미네를 연습에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정했으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어. 게다가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아오미네가 들어줄 리도 없고. 난 결과가 뻔한 일에 내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아.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너는 나보다 아오미네를 잘 알고 있고, 아오미네가 마음을 여는 몇 안 되는 상대지. 어리광을 부려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그런 걸로는 아오미네 군의 마음을 붙들어놓을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도돌이표만 돌고 있다. 그 문답 끝에, 아카시는 자신의 논리가 쿠로코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후, 하고 다시 짧은 한숨을 쉰 아카시는 쿠로코의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려 주면서, 덧붙였다.
“난 네 의지를 존중해. 그래서 네게 어리광을 부리면서 아오미네를 데려와 보라는 명령은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는 그 성격 때문에 언젠가는 손해를 볼 거야, 쿠로코.”
그것은 경고였을까, 아니면 미래 예지의 일종이었을까.
실제로 쿠로코 테츠야의 본질은, 아오미네 다이키의 무기력함을 해결해 준 뒤에도 전혀 변하지 못했다.
* * *
“어? 카가미! 어쩐 일이야?”
후리하타의 외침에, 쿠로코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타월을 살짝 걷어 올렸다. 체육관 문으로 들어오는 카가미를 보았을 때 쿠로코는 제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어질어질한 것은 결코 체력고갈 탓만은 아니리라. 금방이라도 그의 급소를 걷어찰 듯 살기등등한 리코-“내가 무릎 회복될 때까지는 체육관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아-? 그렇게 고자가 되고 싶어, 카가미 군?”-에게 멱살을 잡혀 끙끙대는 카가미-“아, 아니, 오늘은 연습하러 온 거 아니니까! 요! 이거 좀 놔! 줘요!”- 에게서 시선을 피한 쿠로코는 카가미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체육관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나 타월에 가려져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던 탓일까. 그는 구석에 쌓여 있던 수건더미를 건드려 무너뜨리는 바람에 카가미의 시선을 산 것은 물론이고 그 광경을 본 휴가에게도 한소리 듣고야 말았다. 끙.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난 쿠로코는 제게 환한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드는 카가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카가미 군…… 어떻게 할지 정했을까?’
자숙기간인 카가미가 리코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 올 만한 이유라고는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엉거주춤 일어선 쿠로코는 굳어진 표정을 풀려 애쓰면서 카가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여어, 하고 인사를 건네는 카가미에게는 겨우 웃는 낯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저기, 쿠로코. 할 얘기가 있는데.”
“아직 연습 도중입니다만…….”
“딱 봐도 휴식시간이구만, 뭐. 감독, 괜찮죠?”
동의를 구하는 카가미에게 리코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럴 때는 거짓말이라도 해주세요, 감독님. 다소 원망스런 시선을 리코에게 던지고는, 쿠로코는 카가미의 뒤를 따라 체육관을 나섰다. 카가미가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 그런 건 정해져 있었다. 예상대로 체육관 뒤뜰로 돌아간 카가미는, 조금 망설이는 목소리로 저번의 그 일 말인데, 라며 운을 띄웠다.
“어제 타츠야랑 같이 스카우터를 만났어. 순 머리 아픈 이야기뿐이었지만, 뭐, 안 듣는 것보다는 낫더라.”
“히무로 씨가 같이 가 줘서 다행이네요.”
“아, 그래요. 어차피 난 바보입니다. 어쨌든, 고등학교 2년 동안은 그 팀에서 뛰고, 나 하기에 따라서 대학 추천입학이나 실업팀 입단을 주선해 주겠다더라.”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일본인이라도 카가미는 체격이 받쳐주는데다, 영어도 할 줄 알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다루기 편하다는 계산이겠지. 그래서- 그걸 내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 쿠로코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침묵을 견뎌내며,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은 자신을 애써 억제했다.
“주말에 다시 와서 계약 문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
“……그 자리에서 답한 게 아니었습니까?”
“어. 제대로 대답하기 전에, 아무래도 네 의견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내, 의견. 쿠로코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것이 왜 필요한가. 아무리 카가미가 바보라도 그 조건이 미국 내에서 아무런 실적도 없는 아시아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것치고는 무척 파격적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터였다. 설령 그가 눈치 채지 못했다 해도, 히무로 타츠야가 동석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귀띔은 해 주었을 게 분명했다. 쿠로코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찔렀다. 그래도 카가미가 의견을 묻고 있으니, 답은 해주어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의견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이 제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의 메리트에 대해서.
그래, 그것이 당연할 텐데도.
어째서인지 쿠로코는 묻고 있었다.
“제 의견이 왜 필요합니까.”
“그야 넌 지금 내 파트너고, 내 그림자고…… 또 우린 사귀고 있잖아. 네 의견만큼 중요한 게 어딨어?”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상냥하고, 단순하고, 그만큼 솔직하고, 쿠로코를 무척 좋아하는 카가미 타이가라면 분명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할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을 의지해주는 것이 기뻤다. 자신을 향한 그의 애정을 확인하는 이 순간이 가슴 벅차기까지 했다. 고마워요, 카가미 군. 정말 고마워요. 나를 필요로 해 줘서 고마워요.
“답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사실은 네가 어디에도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에이스가 순식간에 없어져버리는 거니까, 곤란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카가미 군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를 신뢰하고, 따르면서, 언제나 나만 바라보는 카가미 군으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걱정마세요. 누가 반대한다면, 제가 카가미 군의 편에서 변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가지 마요. 나하고 계속, 쭉 같이, 내 옆에서 농구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건 역시 말할 수 없다. 쿠로코는 이번에도 본심을 숨긴 채, 카가미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말만을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늘어놓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그림자로서, 파트너로서, 그리고 그의 연인으로서 가장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딱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자 카가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 그 목소리에 담긴 서운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쿠로코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카가미는 지금, 그가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카가미가 아무리 바보라도 이 조건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를 모르지는 않을 게다, 그랬다. 그럼에도 굳이 쿠로코의 의견을 물으러 온 시점에서 답은 나와 있었다.
‘바보군요, 너는. 정말로.’
그러면 더욱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이 남아달라고 하면, 그는 정말 남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쿠로코 테츠야의 어리광이, 카가미 타이가의 빛나는 미래를 막아버린다. 그런 어리광 따위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때로는 그런 어리광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 왜 여기서, 아카시 군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거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못 하는 거예요.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판단을 내려야만 하니까.
「너는 그 성격 때문에 언젠가는 크게 손해를 볼 거야.」
닥쳐요, 아카시 군.
머릿속의 아카시의 목소리를 애써 밀어냈을 때, 카가미가 쿠로코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쿠로코. 그의 낮고, 가슴 설레게 만드는 목소리가 귀를 타고 심장까지 내려갔다. 쿠로코, 날 봐. 내 눈을 보고 말해봐. 깊이 고개 숙인 쿠로코의 안색을 살피듯, 카가미의 눈동자가 쿠로코를 쫓았다. 그러지 마요, 카가미 군. 난 지금 네 얼굴을 볼 순 없어요. 만약 잘못했다간, 나는.
나는-
“……싫, 습니다.”
바보처럼, 참지 못하게 되어버릴 텐데.
“뭐가 카가미 군을 위하는 길인지, 너무 잘 아는데…… 그래도 싫습니다. 카가미 군이 떠나는 건 싫습니다.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도 여기서, 내 옆에서, 내 빛으로, 농구를 계속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말해버렸다.
쿠로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한심하다. 카가미를 위해서라도 격정에 얽매이는 건 참았어야 했는데. 한심하다. 카가미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 없다. 윽, 하고 눈물을 삼키는 소리를 내자 카가미가 쿠로코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울지 마. 그는 그렇게 위로하며 웃겠지.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알았어, 안 갈게. 어디에도 안 갈 테니까. 그런 말을,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막아버린 상대에게 할 게 분명-
“아, 다행이다. 네가 그렇게 말 안 했으면 괜히 손해만 볼 뻔 했잖아.”
“……예?”
뭐라고요?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겸연쩍다는 듯 웃는 카가미의 얼굴이 보였다. 그 웃음에서 쿠로코는 혹시나 하는, 하지만 너무도 카가미다운 답을 읽어내고야 말았다.
“설마 카가미 군…… 스카우트를 거절한 겁니까?”
“응. 어제 그 자리에서. 타츠야가 기겁하더라.”
“예?!”
“그치만 생각해 봐! 윈터컵에서 우승한 건 사실이지만 나 혼자만의 힘도 아니었고, 아직 아오미네한테는 1대 1로 붙으면 깨지기 일쑤고, 키세나 미도리마나 무라사키바라나 아카시나 내년 대회에 또 나온다고 하고, 그 녀석들하고 다시 농구하고 싶고! 어쨌든 이대로는 쪽팔려서 못 간다고.”
이…… 바보 멍청이가!
쿠로코는 할 말을 잃고, 카가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대 치더라도 죽지는 않을 텐데, 때리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남은 그 말을 듣고 죽어라고 고민했는데, 이 바보 천치는 남을 실컷 고민하게 만들어 놓고 답은 혼자서 내려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 기회를 송두리째 걷어차는 방향으로!
“다, 당장 다시 연락해요!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아니, 늦었어. 스카우터는 그 자리에서 귀국했거든.”
“너는 정말 바보입니까?!”
“그러니까 바보라고 했잖아! 방금 전엔 가지 말라면서 울어놓고는!”
“그, 그건…… 그러니까, 잠시 정신이 나간 겁니다. 이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 이 이야기는 이제 끝! 됐어!”
큰 소리로 선언한 카가미는 다시 쿠로코를 부둥켜안았다. 등을 토닥이며 카가미는, 일주일 만에 보는 건데 잠시만 안고 있자느니,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느니, 내일부터 다시 연습에 나올 테니 무시하지 말라느니 하는 시덥지않은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 카가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카가미의 품은 여전히 따뜻하고, 상냥한 기운으로 넘쳐흘러서,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행복하다’ 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때로는 그런 어리광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 말을 한 아카시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이지, 상식으로 대할 수 없는 녀석이네, 너의 새로운 빛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어버릴 아카시를 떠올리자 쿠로코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가미 군은 정말 바보네요…….”
“아, 왜. 보태준 거 있냐.”
“할 수 없지요. 제가 평생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제 허락 없인 어디에도 못 갈 줄 아세요.”
“……응. 그래.”
카가미의 품을 감싸 안으며 쿠로코는, 내심, 아카시 세이쥬로가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요, 아카시 군. 나는 그와 있으면 이 성격 때문에, 평생 손해만 보고 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바보 멍청이니까요. 정말 바보인 사람 앞에서는 이성적인 생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고 아무 소용없는 거였네요.
하지만, 아카시 군. 그건-
정말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생각이 너무 많은 쿠로코와 생각이 너무 없는 카가미의 조합이라 화흑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뻘한 생각을 해본다.
사실 녹적의 조합처럼, 둘 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이리 얽히고 섥히는 관계도 좋아하지만 화흑처럼 단순한 해결책이 있는데 빙 돌아가는 관계도 취향이라고나 할까 녹적은 화흑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나 할까... 는 왜 화흑 로그 후기에 녹적 얘길 하고 있는 거지. 원점으로 돌아가자.
카가미의 단순함에 대해서는, 동급의 바보로 일컬어지는 아오미네나 키세하고는 차이를 좀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오미네는 그렇게 보여도 의외로 복잡한 성격이라서 단순하게 제 좋은 일만 하지는 못하는 타입, 좀 더 나가자면 머리도 안 좋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많은 걸 놓쳐버리는 타입의 바보랄까. 아오미네가 이런 타입으로 성장하는 데는 모모이가 옆에서 누나 노릇 하면서 이것저것 가르친 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사실 아오미네를 위해서는 이 루트 안 타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 자기가 하고픈 대로 하면 될 애가 이것저것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중학교 때 그 사단이 난 거. 또 키세는 머리 굴리는 건 정말 잘 하는데, 본인이 바보라는 사실을 자각을 못 해서 망하는 타입.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행동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엄청 고민하고 생각하는 편. 오히려 쿠로코하고 가까운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죽어라고 고민하고, 그에 맞는 자신을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 얘도 그냥 본능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날뛰었으면 더 괜찮은 애가 됐을 수도 있다. 카사마츠가 그 개고생하면서 애를 잡으려고 안 했어도 됐을 거야... 문제는 얘 본능이 오직 아오미넷치 핥는 데만 적용된다는 거지만. 키세의 그런 성격엔 분명 모델 생활이 영향을 미쳤을 거다.
그에 비하면 카가미는 순도 백프로의 바보. 단순하고, 솔직하고, 생각해서 행동해야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그걸 절대 실전으론 못 옮길 타입. 그래서 쿠로코와의 상성이 가장 좋은 것도 카가미 쪽. 왜냐면 내 쿠로코는 상당히... 해석하면 할수록, 얘는 땅을 파고 내려가면 진짜 끝까지 가겠구나 싶은 애라서... 성적은 나빠도 쿠로코는 절대 바보가 아니고, 오히려 바보가 아닌 만큼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단체로 망하는 느낌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응... 힘내라 싶기도 하고... 본인은 냉정하고 쿨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엄청 노력하는데 속은 사실 열혈소년이라서 고생하는 게 딱 쿠로코 타입. 아오미네한테도 직접 감정을 부딪혀서 주먹으로 해결했으면 어떻게든 됐을지 모르지만 아오미네 배려하랴, 제 멘탈 추스리랴, 주변 사람들(특히 아카시) 눈치 보랴 눈코뜰 새 없이 바빠서 결국 고등학교 때 가서야 아오미네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쿠로코는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하는 타입이라서, 대놓고 싸우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게 아카시 상대로는 잘 안 되었던 것도 있는데...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녹적 로그에 쿠로코가 비중있게 나오면 다시 하기로 하자.
덧붙여서 화흑을 본격적으로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얘네는 뭘 연성하던 간에 언젠가는 나왔던 패턴이라서 애매하다. 내 식으로 소화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아직도 2프로 부족한 느낌이야... 청황은 똑같은 패턴이라도 키세 캐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어서 오히려 쓰기 편한데. 이것이 메이저의 폐해인가... 아니면 내 카가미-쿠로코 해석이 아직 부족한 건가... 음...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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