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11.
荒北靖友x東堂尽八
아무도 없는 부실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그것이 방금 전 자신이 토해낸 욕망의 흔적이라는 것을 아라키타 야스토모는 굳이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 냄새 사이에 섞인 살의 달콤한 맛과 자신이 가한 무자비한 폭력의 결과로 터져나온 피의 알싸한 향도 후회 끝에 묻어버리기에는 아직 너무도 아쉬웠다. 부실 바닥에 널부러진 새하얀 몸은 그가 아직도 제 몸에 묘한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분명 분노하리라. 물론 적어도 그것은 지금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먼지 쌓인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 아무 반항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저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나 '절망' 외의 감정이 다시 어릴지도 의문이었다. 바람이 구름을 움직여, 창문 너머로 들어온 달빛이 쓰러진 자의 몸을 비추었다. 어둠 속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었던 각종 흔적들이 방금 전 행위의 격렬함과 잔인함을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었다. 피가 나올 정도로 세게 깨문 상처, 그 위를 적신 타액과 정액. 그 모두가 자신이 남긴 흔적이었다. 씨발, 나라고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잘못한 건 이 새끼잖아. 내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가 몇 번이나 도망가지 말라고 했지. 씨발."
나지막이 읊조린 욕설은 분명 쓰러진 자의 귀에도 들렸을 터다. 아무 미동도 없던 토도 진파치의 어깨가 살짝, 아라키타의 기분을 무척 상하게 만드는 떨림을 보였다. 화가 났다. 그에게 자신은 언제까지나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 토도를 이끈 것은 전부 아라키타 자신이었기에, '자업자득' 이라는 네 개의 한자가 절로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라키타는 발치에 널부러진 토도의 교복 셔츠를 들어 만신창이가 된 몸 위에 덮어주었다. 천의 감촉이 몸을 스치자 다시 토도가 몸을 움츠렸다. 손목을 잡아채어 인간 세계로 떨어진 산신은 언제라도 다시 제 다리를 거칠게 벌릴 수 있는 한 인간을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 잡아먹어, 씨발. 이를 갈았지만 토도는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두 눈동자에는 초점이라는 게 없었다. 있었다 해도 자신을 바라보는 건 아니었으리라. 목을 붙잡고 바닥에 밀어붙여 억지로 유린하는 동안 토도는 평소에는 그렇게 시끄럽게 돌아가던 입의 모터를 완전히 정지시키고 있었다. 윽, 흡. 가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슬픈 목소리는 아라키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키쨩. 갑작스레 토도의 앞에 나타나 어느샌가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린 토도 진파치 최강의 라이벌은 토도의 앞에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갑자기 그의 곁을 떠났다. 듣자하니, 인터하이가 끝나면 영국으로 가는 것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던가. 사실 거기까지는 아라키타와 관계 없는 이야기였다. 토도도 웃으면서 마키시마를 배웅했다고 했고, 그가 영국으로 떠난 뒤에도 이런저런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연락은 통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별 상관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질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토도 진파치에게 마키시마 유스케는 확실히 특별한 인간이다. 그런데, 그게 뭐? 토도 진파치는 남들이 흔히 하는 '연애' 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 인기가 그렇게 많은데도 "미안! 나는 산이 연인이라!" 라는 웃기지도 않는 드립을 쳐가며 고백을 피하는 것도 아라키타는 하루이틀 본 게 아니었다. 어차피 제 마음을 전해봤자 똑같은 이유로 거절당할 게 뻔했다. 그런 토도를 오랫동안 봐 왔기에 아라키타는 '자전거=클라이밍=마키시마 유스케' 라는 웃기지도 않는 공식이 오직 토도 진파치에게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 생각했다. 적어도 몇 시간 전까지는.
「읏…… 마, 키쨩…….」
아무도 없어야 할 조용한 부실 안쪽에서 토도가 토해내는 목소리는 아라키타가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는 무언가였다. 문 너머로 바라본 토도는 부실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누워서 무언가를 얼굴에 댄 채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아라키타는 토도가 얼굴에 대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키시마가 영국으로 떠난 날 이후로 토도가 줄창 자랑해댔던 것이었다. 클라이밍 할 때 쓰던 마키시마의 장갑. 기념 선물로 받았다던가. 기념도 참 젠장맞을 기념이지. 아라키타는 주먹을 쥐고 토도가 허공으로 희뿌연 액체를 뿜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똑바로 지켜보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토도 진파치는 토도 진파치가 아니었다. 그 언덕광 마나미 산가쿠라도 언덕이나 산을 오르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마스터베이션 따위는 하지 않을 게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이미 아라키타가 세워두었던 확고한 명제는 흔들리고 있었다. 토도 진파치에게 마키시마 유스케는 확실히 특별한 인간이었다. 오롯이, 그의 존재만으로도.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토도는 당황해서 몸을 일으켰다가,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람이 아라키타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을 붉혔다. 아니, 이, 이건 말이다, 아라키타, 그게- 답지않게 말을 더듬는 그 얼굴에 짜증이 났다. 아라키타는 제게 모종의 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손을 뻗어 멱살을 잡고 바닥에 쓰러뜨려, 아직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하의를 모조리 벗겨내고, 뭐 하는 거냐고 반항하는 입에 손수건을 쑤셔넣어 틀어막는 과정에서 토도의 힘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 지장도 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 웃음이 나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자 토도의 어깨가 다시 움찔 하고 떨렸다. 어이, 토- 도. 일부러 말을 늘려 이름을 부르자 눈물 고인 눈이 아라키타를, 아라키타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응시했다. 크게 떠진 눈동자가 공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라키타는 알고 있었다. 그만 둬- 몸을 일으켜 손을 뻗은 토도는 단번에 아라키타에게 제압당했다. 다시 부실 바닥에 엎어진 토도의 턱을 붙잡고 제 얼굴 가까이로 끌어들이면서 아라키타는 이빨을 세웠다. 혀를 물어뜯어버릴 기세로 입술을 맞추면서 버튼을 누르자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을 찍고 난 직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토도는 찢어져 피가 흐르는 입술을 이로 악물고 아라키타를 노려보았다.
"마키시마의 메일 주소, 아직 안 바뀌었지?"
순간 토도의 눈에 어린 절망과 공포를 대체 무엇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아라키타는 웃었다. 약 2년간의 짝사랑이었다. 그 종착역이 이 정액 냄새 나는 부실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 뛰어내려, 그대로 차에 치어버린 것 같은 형국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둘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 어떤 질 나쁜 방법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쨌든 아라키타 야스토모가 토도 진파치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제는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도 없는 소망.
"그러니까, 나한테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마."
널 좋아한다. 옆에 있어 줘.
단지, 그뿐이었는데.
「도망치지 마.」
릴님이 트위터에서 아라토도 ㄱㄱ썰을 푸시기에 후다닥 갈겨썼던 글. 소재가 좀 야할 뿐이지 19금까지 갈 레벨은 아니라서 과감히 비밀번호 안 걸고 올려보는 것이다! ...는 아직 겁페 구금 로그는 무슨 비밀번호로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힘...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비밀번호를 만드는 일입니다. 하하하 아청법 씨발. 그래도 괜찮아! 자위하는 장면이 나온 거 가지고는 아직 19금 타이틀을 달면 안 되는걸! 그건 누구나 하는걸!
쨌든 아라키타→토도→마키시마 전제로 썼는데 이미 토도한테 마키시마가 장갑 주고 떠난 시점에서 마키토도←아라키타 같다... 미안해 아라키타... 사실 산신제 신간이나 각종 마키토도 썰들 보고서 마키토도가 차애로 급부상한 시점에서 쓴 글이라서 마키토도가 반영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RT된거 보고 좋다고 해주신 분들 많았는데 미묘하게 면목이 없다... (mm)... 저런 느낌의 아라토도 앵스트 한번쯤 보고싶기는 하지만 그건 잘하는 분들 있으니까 떠넘김. 또 제목은 아라키타 말투 느낌으로 써봤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니 뭔가 절박한 느낌이 든다... 굳이 아라키타 말투로 의역하자면 "어딜 도망가?" 일 텐데... 아 모르겠다 저 미묘한 뉘앙스 살리기가 힘드니 그냥 CV. 욧칭으로 봐주세요. (...)
덧붙여서 이걸 처음 트위터에 올렸을 시점에는 마키시마 이름이 들어가 있어야 할 부분에 아라키타 이름이 들어가 있었던 대참사가(...) 있었다는 후문. 물론 이 글에서는 수정했으므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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