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21.
真波山岳 x 東堂尽八(♀)
"저 오늘, 엄청난 걸 봤어요!"
"아- 그러냐."
"안 믿어주시는 거예요?"
"알아들었다니까?"
"저 태어나서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정말 엄청난-"
"아, 씨발! 알아들었다고! 알아들었으니까 얼른 가서 옷 갈아입지 못해?! 땀 냄새 난다고!"
카나가와 하코네 학원의 로드 사이클부 부실은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따진다면, 몇 시간씩 쉬지도 않고 주구장창 진행된 인터하이 대비 연습에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그 입을 놀리고 있는 용감한 1학년, 마나미 산가쿠와, 원래 인내심이라고는 모기 눈알만큼도 없었던 탓에 그 입방정을 5분도 버티지 못해 결국 성질을 내고 만 아라키타 야스토모라 하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 양키 출신의 저 무지막지한 에이스 어시스트가 갓 레귤러에 합류한 사랑스러운-물론 4차원의 세계로 빠져든 마나미 산가쿠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았겠지만은-1학년 클라이머를 곤죽으로 만들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1군 주전 중 그들을 말릴 만한 심성의 소유자라고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신카이 하야토는, 되도록이면 일이 자연스레 수습되기를 바라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라키타와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고도 아직 눈을 빛내고 있는 마나미 사이로 끼어들었다.
"진정해, 야스토모. 마나미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잖아. 마나미, 너도. 땀 그렇게 흘리고 옷도 안 갈아입으면 감기 걸린다구?"
"하지만 정말로 굉장했는걸요! 신카이 선배도 들어보세요! 저, 오늘 정말 좋은 컨디션이었거든요? 언덕을 올라가면서 진짜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제 옆을 누군가 슝 하고 지나가는 거예요! 엄청난 스피드로! 소리도 내지 않고 가속하면서!"
"신카이…… 저 놈 입 좀 막아라. 안 그러면 정말 온 힘을 다해 패버릴지도 모르니까."
아라키타가 진저리난다는 표정으로 귀를 틀어막고 성큼성큼 탈의실 쪽을 향했다. 그러나 아라키타의 불만에도 이유는 있었다. 그는 이 골치아픈 1학년이 1군에 합류한 순간부터 그의 모든 서포트를 담당해야 했다. 마나미와는 포지션도 다른 아라키타가-아라키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이따위 귀찮은 짓'을 해야 했던 이유는, 정말 슬프게도 하코네 학원 사이클부의 1군에는 마나미를 휘어잡을 만한 클라이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하코네 학원 사이클부에는 입학 당시부터 클라이머 자리를 지켜 왔던 3학년생이 둘 있었으나, 모든 스포츠 만화의 3학년생이 그러하듯 그들은 작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 졸업한 뒤였다. 그들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2군에서 현재 2학년인 쿠로다 유키나리와 문제의 마나미 산가쿠가 승격되어 올라온 것이었으나, 아쉽게도 쿠로다의 클라이밍 실력은 산을 타넘을 때 마치 날개를 단 듯 활개치는 마나미의 실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니 우선 쿠로다가 마나미를 휘어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에서 가장 권위있는 주장인 후쿠토미의 경우 워낙 할 일이 넘쳐났고 부주장인 신카이의 경우에는 스프린터로서 케어해야 할 이즈미다라는 후배가 따로 있는 이상, 남는 것은 부의 마지막 3학년인 아라키타였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마나미의 4차원 발언이 도가 지나치는 바람에 그림을 모사할 때 쓰는 특수지만큼이나 얄팍하기 그지없는 아라키타의 인내심이 뚝 끊어질 경우에는 그나마 신카이가 주도하는 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아라키타의 이성이 버티고 있는 것은 오직 그 덕분이었다. 더 덧붙여 말하자면, 신카이가 차마 커버하지 못할 정도의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아라키타가 어떻게 돌변할지는 그 후쿠토미조차도 책임을 질 수 없을 정도로 아라키타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사람 얼굴은 봤어?"
"스쳐지나가듯 보긴 했어요. 그런데 얼굴 같은 건 하나도 기억에 안 남고, 그 엄청난 주행만 기억나더라구요! 믿어지세요? 중력의 영향 같은 건 전혀 받지 않는 주행이었어요! 그걸 봤을 때 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어이, 잠깐. 중력이 어쩌고 어쨌다고? 너, 대체 누굴 본 거야?"
"음…… 그러니까, 오늘 단체연습을 할 때 크게 웃으면서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요! 저희 부원은 아니었죠?"
"야, 신카이. 그거 설마……."
그래, 예를 들자면.
"와하하하하! 고맙다, 2학년 제군! 몇 번이고 들어 이미 귀에 박혀버린 찬사지만, 너희들의 진심만큼은 확실하게 와 닿았다!"
부실 한가운데에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의기양양하게 쳐웃고 있는 저 '부외자'의 존재라거나 하는 것이.
"음? 오오, 아라키타! 신카이! 늦었지 않은가! 다들 벌써 옷을 갈아입고 있는 참이라고!"
"너 이 새끼! 부외자 주제에 부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탈의실 안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라키타와 그런 그를 말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 듯 웃기만 하는 신카이의 뒤에서, 마나미 산가쿠는 눈을 빛냈다. 허리까지 오는 흑발 롱 헤어를 당당하게 늘어뜨리고, 다소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머리띠로 앞머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아주 적당하게 근육이 붙은 얇은 몸에 바이크 수트를 입고 있는 그 부외자야말로 바로 언덕광 마나미 산가쿠를 그렇게나 흥분하게 만들었던 주행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뭐냐, 네놈은! 너희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음료수까지 사 온 이 나에게! 어서 고맙다고 하지 못할까!"
"고맙긴 개뿔! 갑자기 끼어들어서 연습 훼방놓은 주제에 어딜 음료수로 떼우려고 해!"
"부외자 한 명이 끼어들었다고 너희들이 흔들릴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후쿠는 괜찮다고 했다고!"
"아- 진짜! 후쿠쨩, 이 자식이 쓸데없는 소리 하면 제발 들어주지 마! 버릇 나빠진다고!"
"무, 무슨! 사람을 일곱 살 먹은 아이처럼 말하지 마라! 뭐니뭐니해도 나는-"
"-멋있었어요!"
인간의 말이 글자가 되어 허공으로 튀어나오는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그들의 주변에는 느낌표 외에는 맴돌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 정도로 시끌벅적한 현장을 순식간에 조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마나미 산가쿠에게는 있었다. 아라키타와 부외자 사이에 맴돌던 온갖 신경전을 '멋있었다'는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 마나미는, 차마 그가 끼어드는 것을 말리지 못한 신카이가 휴, 하고 짧은 한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부외자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
"정말, 정- 말 멋있었어요, 그 주행! 저,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넌 평소엔 죽어 있냐……."
그렇게 불만스레 중얼거린 아라키타는 쳇, 하고 혀를 찼다. 또 시작이다, 또. 언덕광 마나미 산가쿠의 클라이밍 예찬이. 게다가 하필이면 상대가 이 녀석이냐. 마나미에게 손을 붙잡힌 채 영문 모를 찬사를 듣고 있는 부외자에게 흘깃, 시선을 준 아라키타는 슬쩍 그들 사이에서 발을 뺐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방금 전 아라키타 자신이 내던지던 느낌표보다 더한 느낌표의 향연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오오, 그러냐! 봐 준 거냐, 이 몸의 클라이밍을!"
"예! 정말 멋있었어요! 첫눈에 반했습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좋아, 좋아! 하긴, 너도 눈이 있다면 이 나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겠지! 찬양해라, 더욱 찬양해라!"
"어, 그런데 왜 저희 부 소속이 아니세요? 그렇게 잘 타시는데."
순간 탈의실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장본인은 물론이고 웬만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후쿠토미나 기겁한 얼굴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신카이마저도 그 폭탄발언에 놀라 굳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 장소에서 당황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질문의 답을 순수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마나미 산가쿠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아라키타는 이마에 손을 짚은 채 중얼거렸다. 저 놈은 눈깔이 없나?
"……너, 이름이 뭐야?"
"마나미 산가쿠입니다!"
"아하, 네가 그 새로 들어왔다는 1학년 클라이머군. 그렇다고 해도 이 몸의 이름을 모르다니, 어지간히 주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고 있구나?"
"아, 맞다! 아까부터 뭐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했더니, 이름을 안 여쭤봤네요."
"훗…… 알고 싶다고 한다면 가르쳐 주지! 이 몸이야말로 하코네 학원의 산신! 범인들은 따라올 수도 없는 주행으로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산의 정상을 지배하는 슬리핑 뷰티! 그런 나의 이름은-"
"토도잖아. 토도 진."
"이익, 아라키타! 왜 갑자기 끼어들어 초를 치는 거냐!"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애를 붙잡고 대체 몇 분이나 코미디를 찍을 생각이야! 복잡해지니까 넌 입 다물어!"
"읍읍읍!"
결국 다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아라키타는 흥분해 날뛰는 토도의 입을 손으로 막고, 눈을 빛내며 그렇구나, 토도 선배구나, 하고 그 이름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마나미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나미 산가쿠가 정신을 집중할 만한 한 가지가 보이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 있는 존재의 진짜 실체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보 멍청이인 줄은 몰랐던 그는 도중에 제 몸을 사려 뒤로 뺀 것에 대해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물론 아라키타 본인은 입이 찢어져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래서 그는 이 재미없다 못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전부 외면하게 만드는 촌극을 끝내기 위해 아주 결정적인 단서를 마나미에게 제공했다.
"어이, 마나미. 잘 들어라. 우리가 나가는 인터하이는 남자부 대회지?"
"네? 아, 그렇죠."
"그러니까 이 녀석은 우리 부에 들어올 수도 없고, 대회에 나갈 수도 없어."
"예? 왜요? 그렇게 멋진 주행이었는데!"
"아, 이 정도까지 말하면 좀 적당히 알아 처먹어라! 이 녀석은 말야, 여자야! 여자라고! 토도 진, 하코네 학원 고등부 3학년! 이름이고 하는 짓이고 워낙 사내새끼같다 보니 못 알아차릴 수도 있겠다만, 일단은 제대로 된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고! 애초에 겉모습 보면 잘 알잖아? 머리도 길고, 벽에 껌딱지 붙여놓은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가슴도 있으니까!"
"꺼, 껌딱지라니 그게 무슨 모독이냐, 아라키타! 이래뵈도 예쁘고 모양 잡힌 가슴이라고 인식하고 있거늘!"
"뭐, 뭔 헛소릴 하는 거야! 누가 니 가슴 얘기 하고 싶댔냐?!"
"잘 들어라, 아라키타여! 저번 신체검사 결과에 따르면 내 가슴 사이즈는-"
그 순간 부실에 있던 전원이 군침을 삼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겉모습만 보면 꽤나 미형인 신카이나 이즈미다, 진중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망이 높은 후쿠토미, 입이 거칠고 험악한 인상이지만 친해지면 얻는 게 많은 아라키타를 포함하여 그들 누구도 여자 친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서글프고 서글픈 남자 고등학생들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매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방금 전 자신의 가슴 사이즈를 부실 안에 폭로하려 했던 소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마나미 산가쿠를 뺨치는 오두방정과 아라키타가 설명했듯 남자를 연상시키는 행동거지 때문에 평소에는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지. 어찌되었든 자신의 동기- 혹은 선배, 그것도 미인의 가슴 사이즈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은 남자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 하나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은 그 직후 일어난 돌발사건에 의해 완전히 묻혀 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이 헛소리를 도저히 참아줄 수 없었던 아라키타가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을 막은 것도 아니며 부실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듣고 달려온 감독의 난입도 아니었다.
바로 순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 채 제 손을 앞으로 뻗어, 그 부드러운 살덩이를 한 손 가득 쥔, 천진난만함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소년의 한 마디였다.
"아, 정말이다. 가슴이 있네요."
지퍼가 반쯤 열린 라이딩 슈트 위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뻗어온 마나미 산가쿠의 손은 평범한 남학생들이라면 엿보기만 할 뿐 감히 범접해 본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금단의 영역을 만지고, 심지어는 살짝 움켜쥐기까지 했다. 문제는 뜻밖의 상황에 완전히 굳어버린 장본인과 그 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아라키타와 달리 마나미는 어디까지나 순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라키타 선배, 역시 선배가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껌딱지보다는 크신데요!"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발언에 비명을 지른 것은 분명히 방금 전 부실 한가운데에서 제 가슴 사이즈를 공개하려 했던 소녀였다. 마나미에게서 황급히 떨어져 나간 토도는 뒤로 물러나려다 그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으나, 그녀를 일으켜 세워줄 만한 매너 있는 남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마나미의 충격적인 행동과 발언에 모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넘어진 토도에게 구원의 손을 뻗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그 원흉인 마나미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우와, 괜찮으세요, 토도 선배? 일어나세요."
"어, 어어……."
사람이 얼이 빠지면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된다고 했던가. 정답이었다. 방금 전의 사건으로 완전히 얼이 나가 버린 토도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한 손이 방금 전까지 제 가슴을 만진다는, 정말 천인공노할 만한 짓을 저지른 손이라는 사실을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덕분에 마나미는 멍하니 일어선 토도의 손을 잡고서 굳은살이 잘 배었다느니 하는, 저보다 두 살 많은 미소녀가 아니라 단순히 클라이머에게만 할 법한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와- 엄청 많이 연습하셨나 봐요! 대단해요!"
"어? 아…… 그래, 고마워……."
" 그 주행,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한번 더 보여주세요! 저, 실은 방금 전 제가 본 게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 모르겠거든요! 바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지금 당장 보여주세요! 저희 둘 다 옷 안 갈아입었으니 그래도 되죠?"
"응…… 그래, 보여줘야지……."
"신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순식간에 진행된 대화 끝에 마나미는 토도를 이끌고 탈의실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탈의실 안에 남겨진 n명의 남학생들은 문이 닫히는 탕, 하는 소리에 모두 최면에 풀린 듯 현실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기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는데, 그들 전원이 믿을 수 없는 광경과 대화를 들었던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깜박이는 가운데 그나마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건 문 가장 가까이에 있어 그 광경을 가장 멀리서 목격한 신카이였다. 그러나 신카이는 역시 신카이 하야토였던지라,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주변 사람들- 특히 아라키타의 태클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말이었다.
"그렇군……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사랑의 시작……."
"웃기고 자빠졌네! 뭐가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야!"
"괜히 내가 심장이 설레는걸……."
"부정맥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 아니, 그것보다 이 자식들은 어디 갔어?! 설마 정말 타러 간 건 아니겠지!"
"그건 안 좋은데. 마나미는 오늘 연습에서도 흥분해서 오버 페이스로 밟았었다. 인터하이가 가까운데, 지나친 연습은 좋지 않아."
"그럼 내가 당장 끌고 오겠어! 그리고 말 나온 김에 후쿠쨩, 토도 자식 여기 못 오게 좀 막아! 예전부터 연습 끝나면 탈의실 쳐들어와서 다들 옷 갈아입을 때까지 시끄럽게 떠들기나 하고! 게다가 이젠 우리 1학년을 꼬셔서 튀었잖아!"
아니, 누가 봐도 토도는 말려든 입장이다. 아마 지금쯤은 바이크 위에 타고 있겠지만, 정신이 들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다. 그걸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흥분한다는 것은- 신카이는 제 화를 못 이기고 씩씩대는 아라키타에게 파워바를 건네며 그 특유의 윙크-아라키타는 기분 나쁘다고 했지만-를 날리며 돌직구를 던졌다.
"야스토모, 질투하는 거야? 그건 좀 꼴불견일지도."
"누, 누가 질투했다는 거야, 누가! 난 그런 여성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나오는 계집애한텐 관심없어!"
"아니, 진 쨩 얘기가 아니라 마나미 말야. 귀여워하던 후배를 빼앗겨서 질투하는 줄 알았지."
"그, 그, 그, 그게, 그러니까! 웃기지 마! 마나미 자식은 요만큼도 안 귀여워! 시끄러운 게 두 개로 늘어나는 건 딱 질색이야! 당장 끌고 오겠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선언과 함께 아라키타가 탈의실을 뛰쳐나갔다. 쯧쯧, 혀를 차던 신카이는 아직도 충격에 휩싸여 있는 이즈미다 외 2학년생들을 바라보며 할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나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개중에는 마나미가 돌아오면 멱살을 붙잡고 '부드러웠냐?!' 라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을 중증 토도 팬도 존재했다. 하긴, 나도 좀 놀라긴 했다. 설마 가슴을 잡을 줄이야. 그 토도 진조차 당황했을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마나미 산가쿠의 4차원 저력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굉장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마나미 스스로의 입으로 토도의 언덕 주행에 반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아마 그녀는 한동안 마나미의 악의 없는 스토킹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늘 토도의 옆에 있는 아라키타가 그걸 가만히 보고 넘길 리 없으니 그 동안은 그들의 교실도 시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결국 가운데에서 중재하는 건 내 몫인가? 신카이는 차창 밖으로 넓디넓은 하코네 학원의 부지를 바라보았다. 세워 두었던 로드 바이크가 두 개 실종됐다. 그것이 마나미와 아라키타의 것이라는 걸 파악한 신카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지금쯤 하코네 산 중턱쯤에서 벌어지고 있을 사랑의 레이스를 생각하며, 피식 웃고 마는 것이었다.
모처에서 리퀘 받아서 쓴 첫 페달 연성... 이 심지어 ts토도에 본진도 아닌 마나토도일 줄은 몰랐다는 거시다... 나는 정말... 놀랐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페달에 영업당해서 인기캐인 토도를 붙잡고 늘어진건 좋았는데 하필 본진이 한국에서도 개썅마이너인 아라토도에 토도수라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토도님이 아름다우시므로 그냥 넘기기로 하겠다. 게다가 내게는 어차피 일본 오프샵의 수많은 동인지들이 있어! 8월 10일에는 토도 수 온리전도 열린다구! 하하하! 나는 외롭지 않아!
...는 개소리고 일단 글 얘기를 하자면, 러브 코미디풍으로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정말 더럽게 진지해쳐먹은 얘기만 쓰다보니 겁페 전반적으로 풍기는 이 소년소년하고 귀염귀염한 분위기를 살리기가 매우 어렵다... 왜일까... 쿠로바스 애들보다 얘네가 더 나이가 많은데 얘네가 더 소년 같아... 는 미도리마랑 아카시가 진지하기로는 그 만화 내에서도 톱 1위 2위를 달리는 애들이니까 그렇지요. 저도 안다고요.
마나미는 워낙 애가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걸 컨셉으로 잡은 애라서 쓰기 굉장히 어려웠다. 뭐야 순수한 애라니 난 그런거 잘 모르겠어 더러워진 어른이라! 차라리 입 험한 아라키타나 자뻑 쩔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이라는 게 있는 토도 쓰는게 더 편하다. 그리고 제일 쓰기 쉬웠던 건 누구? 신카이요... 엉엉엉 보케 주제에 상황 마무리하는건 더럽게 잘해 엉엉엉... 좋아해 신카이... 그런 널... 어쨌든 하코네 학원 애들은 쓰면 재미있다. 드디어 평화로운 만화를 읽었어요! 유님은 이제 자유로운 덕후예요!
다음엔 아라토도 쪽을 써보고 싶은데 얘네가 하는 짓이라곤 토도가 보케짓을 한다→아라키타가 츤츤대며 잔소리를 시전한다→둘이 싸우는 걸 후쿠토미/신카이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구도가 너무 많고 이 구도로는 존잘님들이 워낙 많으셔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연성할 필요가 없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덧붙여서 이 글에 쓴 토도쨔응 설정.
토도 진(東堂 尽). 164cm, 50kg. B81-W58-H80. 하코네 학원 고등부 3학년. 아라키타, 신카이와 같은 반.
하코네 학원 로드 사이클부 여성부의 유일한 부원… 이랄까, 실질적으로 혼자 타고 다니는데 남자부 애들이랑 어울리면 매니저 소리 들으니까 늘 자기는 유일한 여성부 부원이라고 말하는 것. 그래도 조금씩 매니저 일도 해주기는 했다. 음료수를 사주거나 유니폼 빠는거 도와주거나. 작년 인터하이에 후쿠토미 응원하러 갔다가 마키시마 유스케의 라이딩을 보기 전까지는(...). 그 뒤 그냥 해주던 매니저 일도 거의 때려쳤으므로 작년 인터하이 이후에 들어온 아라키타는 매번 부실에 찾아올 때마다 외부인은 들어오지 말라고 깐다. 사실은 그냥 마키쨩 타령하는게 맘에 안 들 뿐. 그 뒤에 신나게 승부하자고 쫓아다니고 있는데 마키시마 쪽은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랑 클라이밍 시합이라니 말도 안 되잖니!" 라면서 플래그 산산조각 내는 중. 연애감정으로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음. 덧붙여 일단 아라키타가 얠 좋아하고+마나미도 반하긴 반했는데 여자한테 반한게 아니라 클라이머한테 반한거라 망... 후쿠토미랑 신카이는 그냥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다... 이름이 남자 같지만 아무런 컴플렉스 없음. 덧붙여 이름의 한자는 'つきる' 라고도 읽을 수 있어서 신카이에겐 '츠키' 라고 불린다. 아라키타가 따라해보려다 얼굴 터질 뻔한 얘기도 있는데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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